어느푸른저녁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 듯

시월의숲 2018. 6. 26. 23:06

또 어떤 우울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동안 부산을 다녀왔고, 기타를 배우고 있고, 나름 일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고자 노력했는데, 다시 일을 해야한다는 절망감이 나를 자꾸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어쩌면 일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단순히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오늘 누군가 내게 쓸쓸해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무언가를 부여잡고 울고 싶었는데, 누군가 그런 말을 하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즐거웠던 식사시간이 더이상 즐겁지 않다. 나는 밥 먹는게 너무나 힘들어서 내가 이러다 정말 큰 병에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모든 신경들이 날카롭게 나를 찌르고 있다. 오늘 집에 오는데,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가 걸렸는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직진을 했다. 모든 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어어어, 하면서 신호를 지나쳐갔는데,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어둡고, 어설프게 비가 왔고, 내 마음도 덩달아 안정되지 않고, 어수선하고, 불안하며, 침울했다. 저번 주말에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다음날 내가 어떻게 그의 사택에서 자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점점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무엇이었던가. 내가 아닌 것이 된다는 건, 일단 내가 무엇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할텐데, 지금 나는 원래의 나, 나의 본래 모습, 성격, 말투, 목소리,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무언갈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이 늘어난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한꺼번에. 그래서 내 머릿속이 과부하에 걸린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누군가, 누군가 나를 좀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좀 안아주었으면. 한바탕 실컷 울고 싶다. 그러면 좀 나아질까. 이 알 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