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실제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해도

시월의숲 2018. 6. 4. 00:05

십 년이 넘게 사용해 온 컴퓨터가 망가졌다. 드디어, 라고 해야 하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짠하다고 해야할까. 십 년이란 시간동안 큰 문제 없이(물론 중간중간 포맷도 하고, 수리도 했지만) 나와 함께한 친구 같은 존재였는데 며칠 전 부터 아예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컴퓨터에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고, 십 년을 사용했으면 이젠 바꿀 때도 되었다는 생각에 새 컴퓨터로 교체를 했다. 모니터는 몇 달 전에 샀기 때문에 본체만 새로 구입했다. 새로 산 컴퓨터는 이전에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고, 명쾌했다. 그동안 내가 버벅거리는 컴퓨터로(어쨌건 컴퓨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용케 지금까지 사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컴퓨터를 바꾸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컴퓨터 없이 생활한 일주일은 이상스레 마음이 헛헛했다. 내가 인터넷에 들어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남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 때문이었는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암튼 마음이 그랬다. 나는 아직도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까? 아님 어떤 기대를? 하지만 그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익숙하게 반복되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익숙한 기대와 좌절을 느꼈다. 내 이런 내면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컴퓨터는 생겼고,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며, 나는 또 이렇게 누구에게랄것도 없는 글을 쓴다. 어쩌면 지금은 십 년간 나와 함께 한 컴퓨터를 위한 애도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컴퓨터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혹은 착각하고) 살았으니까. 실제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었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