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지금이 바로 그때, 라고 생각되는 순간

시월의숲 2018. 7. 16. 23:25

뜨거운 계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태양볕 아래 주차해둔 내 까만 차를 타기가 두려워진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갑자기 폭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 이렇게 뜨겁고 후덥한 계절에는 뭘 해야만 하는 것일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에어컨을 틀 수 있는 사무실이 그나마 낫지만, 사무실에서는 일을 해야하기에 에어컨의 시원함이 그리 좋기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기 속을 타고 흐르는 끈적하고도 뜨거운 열기는, 이곳이 과연 내가 사는 곳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이제 시작이라고 해야할까. 아직 본격적인 열대야는 온 거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그동안 조금씩 책을 읽었다.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며칠 전 다 읽었고, 지금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라는 생소한 포루투갈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물론 이 생소한 작가의 소설은 배수아가 번역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이 소설을 접할 길이 없었을테니까. 요즘 배수아가 번역한 책들을 읽는 것이 내 책읽기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뭐랄까, 내 편향된 독서에 좀 더 다양한 카테고리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해야할까. 물론 배수아가 번역한 책들은 대부분 소설이지만, 그 소설의 색깔은 저마다 다르며 독특하다. 지금 읽고 있는 안투네스의 소설 또한 무척이나 생경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따라가기 힘든, 아예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힘들어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은 책 자체의 힘일까 아니면 배수아라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의 힘일까. 


더운데도 불구하고 이사를 할 계획을 하고 있다. 아니, 이사 계획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그 시기를 지금까지 늦춰온 것이다. 아니, 늦췄다는 말도 맞지 않다. '어쩌다보니 늦어지게 된' 것이니까. 여름에는 옮겨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여름이 되니 더워서 움직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일 년을 훌쩍 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집을 마련해놓고 아직도 들어가 살 생각을 하지 않다니. 집한테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들어가겠지.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는 게 최고니까.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 나오는 기사단장이 마리에에게 한 충고처럼, 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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