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약간의 염원 같은 것

시월의숲 2018. 6. 9. 16:15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다.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씻고, 아침으로 간단한 토스트를 해먹고 사전투표를 하러 집을 나섰다. 집에 있을 때는 바람이 제법 불어서 크게 덥다고 느껴지는 않았는데, 나오니까 햇살이 조금 따가웠다. 그래도 이 정도 더위는 아직 덥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더울 일만 남았으니까.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솔솔 불고, 하늘은 푸르고 약간의 구름이 그림처럼 군데군데 떠 있었다. 그늘에 있으면 몇 시간이고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씨였다. 지방선거 당일날에도 아무런 스케줄이 없었지만, 그냥 오늘 사전투표를 했다. 인터넷 뉴스에서는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대라는 등 기사가 떠 있었다(어쩌면 잘못 보았는지도 모른다). 다들 나같은 마음이려나 생각했다. 사전투표를 하고 나오는데 나보다 먼저 사전투표를 마친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는 도장을 찍는데 손이 떨리더라는 말을 했고, 어떤 이는 도장이 제대로 안나와서 잘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하나같이 어떤 뿌듯함이 느껴지듯, 억양이 약간 올라가 있었다. 나도 정치에 그리 관심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번 선거에는 약간의 염원 같은 것을 담아 투표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지역에서 나만의 작은 염원이 그리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대같은 것이 있었다. 어쩌면 내 삶은 그와 무관하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일터에도 가지 않고 느긋하게 쉬고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일하러 나가는 것도 꽤 스트레스였던 것이다.(물론 자발적으로 나간 것이긴 하지만) 냉장고에서 상해가고 있는 식재료들을 꺼내다 요리를 해야겠다. 그동안 지속적인 야근으로 요리를 하지 못했다. 하루키의 책도 마저 읽고, 통기타도 연습해야지. 나만의 온전한 토요일 오후라고 해도 될까. 일 생각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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