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처음 마음

시월의숲 2018. 9. 11. 22:14

일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혹은 지금 내가 힘겨워 하는 이유가, 처음 먹었던 마음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그 마음가짐,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고, 빨리 익히려고 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그 마음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일까. 이젠 편할 때도 되었는데 혹은 이젠 좀 쉬엄쉬엄 일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까. 어떻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더욱 힘겨워지고, 부담스러워지고, 편해지지가 않는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알 길이 없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일까. 나는 한다고 하는데, 그에 따른 조금의 칭찬의 말도 없이, 그저 잘못된 점만 지적하고 평가하기 때문일까.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보다는 일에 치여 하루하루 겨우 견뎌내고 있는 나를 보는 일은 참담하지 아니한가. 나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건 지독히도 슬픈 일이 아닌가. 내 삶에 결여된 부분이 시커먼 구멍처럼 나를 덮칠 것만 같아 나는 종종 두렵다. 그 구멍이 점차 커지고, 그 안의 어둠이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면. 언젠가 내가 그 구멍에 먹혀버리는 날이 올 것만 같아 때로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 그것은 초심에서 멀어졌다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초심에서 멀어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결여'이기 때문이다. 자다가 불현듯 급격한 슬픔이 몰려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잠에서 깨었을 때, 부르르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아직 어두운 방 안에서 쉬어지지 않는 숨을 겨우 내쉬며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 때, 나는 결여를 본다. 그것은 물론 가슴이 뛰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따로 있다. 직업이라는 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면 할수록 힘들다고 느껴지는 그 일이 내 결여를 상당부분 잊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지 않고, 힘겨워만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다. 그것이 정말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면, 나는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만 하는 것일까. 처음 마음은 정말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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