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먼 바다를 바라보듯 그렇게

시월의숲 2018. 9. 21. 22:15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 때문에 불쑥 욕을 하게 되고, 그것을 들은 사람이 무척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평소 욕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던 사람인데, 갑자기 욕을 하다니! 그는 조금은 걱정스럽고도 놀라운 표정으로, 그리고 약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가 욕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듯, 내가 한 욕에 대해서, 그 욕의 맥락에 대해서 생각해보고는 오히려 상대방보다 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아니, 내가 왜,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욕을 하게 되었는가. 나는 내가 화가 난 이유보다도 욕을 했다는 사실에 더 큰 놀라움을 느낀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무척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왜 그래? 하고 묻는다. 아주 당연한듯 욕이 나오게 만드는 '화'를 다스리지 못한 나 자신의 부주의함에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왜 나는 욕을 하면 안되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떤 특정 상황이나 생각, 시선, 태도 등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센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평소에는 비교적 너그러운 태도로, 감정의 큰 변화 없이 사람이나 상황을 대하면서도 어떤 특정 대화나 생각, 태도, 시선의 자기장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화의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한 특정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내 처지를 상대방이 너무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식과 그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상대방이란 '가족'을 의미한다. 타인에게서는 그러한 민감한 센서가 발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했으면 됐지 또 무얼 바라는 것인가, 라는 불만이, 내 가족에게서부터 발생했을 때,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욕이 나올만큼.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내 가족들을 만날 것이고, 이야기를 할 것이고, 밥과 술을 마시고, 제사를 지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한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근원적인 슬픔이 명절 때 더욱 극명하게 만져지는 것만 같다. 명절 때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슬퍼하는 것이 내 가족들 때문인가 아니면 나 자신 때문인가. 나 자신의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인가. 몇 번이고 반복되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에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조금 초연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언제쯤 먼 바다를 바라보듯 그렇게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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