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안토니오 로부 안투네스, 《대심문관의 비망록》, 봄날의책, 2016.

시월의숲 2018. 11. 13. 23:33

살라자르가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생크림 케이크와 허브티를 건네주던 내가, 제독과 알고 지내던 내가, 썩은 감자를 썰어 냄비에 넣고, 몇푼의 연금으로 벌레 먹은 사과와 장어 토막을 사면서 행상인의 저울을 의심하게 되리라, 빈 국수상자와 빈 콩봉지와 빈 쌀포장지와 함께 선반에 놓인 야광 플라스틱 마돈나 상에게 기도를 올릴 때 기도문을 혼동하여, 아무 연관이 없는 문구들을 두서 없이 뒤섞게 되리라, 내 어머니가 뱉어내던 욕설, 어린 시절에 알던 노래, 누가 예쁜 배를 보았나, 나는 올해가 몇 년인지 무슨 달인지, 시간이 몇 시인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하리라, 까마득한 옛날에 죽은 내 부모를 떠올리며 분노하게 되리라, 내 것이 아닌 개를, 분명 내 것이 아니었던 개를, 어쩌면 내가 길렀을지도 모르는 개를, 한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개를, 과거에 내 것이었던 개를, 휘파람으로 부르게 되리라, 나는 죽은 자들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그들과 다투게 되리라, 내 말에 반박하고, 내가 나가지 못하게 막고, 나를 고발하는 죽은 자들과, 나는 성당으로 가는 도중에 길을 잃게 되리라, 그리하여 오후 내내, 마르팅 모나스 광장 주변을 빙빙 돌고 있으리라, 인텐텐테 역에서는 트럭 운전수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과 싸움을 벌이게 되리라, 그들이 나를 모욕하고 조롱했기 때문에

 "어이 아가씨 예뻐 죽겠네"

그들을 향해 내 몸보다 더 무거운 지팡이를 휘두르며 저주를 퍼붓다가, 균형을 잃는 바람에, 간신히 층계 난간을 붙잡고, 거기 있던 고양이들이 뛰어 달아나니, 내 입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 지저분한 욕이 터져나오리라

 "똥돼지새끼들아 니 에미 똥구멍이나 쑤셔라 구더기 좆 같은 놈들"(453~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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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어린아이처럼, 말도 안 되는 흠을 잡아 누군가를 거부하게 되는걸까, 말할 때 입술을 움직이는 모습, 포크와 나이프를 쥐는 모습, 코를 푸는 모습, 그런 사소한 특징들을 즉시 커다란 결함으로 만들어 그 사람을 피하는 구실로 삼으며, 그 사람과는 몸이 닿는 것도, 함께 사는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도 거부하고, 그리하여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자기연민에 빠지고, 그러다보면 자기연민이 마치 위로인 것처럼, 자기연민에 빠진 나로 인해 기분이 좋고, 처음에는 순전히 흠을 잡기 위한 구실이었지만 그 효과는 참으로 강력하여, 결국에는 그 사람의 피부나 목소리, 몸짓, 태도까지도 모두 견딜 수 없어지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거슬리고, 성가시고, 지루해지고, 도대체 내가 왜 그녀에게 끌렸던 걸까, 사랑에 빠졌다는 생각은 혼자만의 상상이었음에 틀림없어, 도대체 나는 왜 지하철 거지에게서 산 하찮은 싸구려 반지 하나에 그토록 열광하고, 은조차도 아닌 그것이 뭔가 특별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생각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나는, 그냥 평범할 뿐인 회색 스웨터와 회색 치마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한마디 말도 없는 소녀의 검은 곱슬머리에 정신을 빼앗겼을까, 시내 모퉁이마다 수십 명씩 돌아다니는 그런 소녀 중 하나, 그런 소녀를 만나고 싶으면 빵집만 들어가도 되고, 관공서나 동네 미용실만 들어가도 충분한데, 여섯시 퇴근시간에 맞춰 전차정류장의 긴 줄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데, 도대체 왜 나는, 다 해어져서 올이 드러난 양탄자를, 코팅이 벗겨진 냄비를, 설사 그냥 준다고 해도 집시들조차 가져가지 않을 허접한 넝마를 잊지 못하는 걸까,(514~5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