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별 헤는 밤

시월의숲 2019. 4. 16. 23:36

며칠 전,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논의되었던 블랙홀의 존재를 실제로 관측하고 사진까지 찍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 기사가 나온 날, 뉴스룸에서는 그와 관련된 앵커브리핑이 나왔다. 앵커브리핑의 결론은 먼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한낱 점에 불과한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리 애가 닳고 분노하며 탐욕을 키우는가, 였다. 그 결론도 물론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지만, 그보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언급했던, 윤동주의 별헤는 밤과, 아이들이 달에 대해 상상했던 그 감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내겐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려 오십 년 전에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내딛고, 불과 며칠 전에는 이론 속에서만 존재했던 블랙홀의 실제를 인간이 관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가 별과 달, 밤하늘을 보면서 키웠던 무수한 상상력과 그 감성은 다 무엇인가, 라는 물음 말이다.


물론 이것은 별과 달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이 지금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신비가 한 꺼풀 벗겨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별과 달을 보고 상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때로 과학적이고 분석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감성적이고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블랙홀 관측 기사를 보았을 때는 인간이 점차 고독해져만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들었다. 우주의 신비가 벗겨질수록,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의 비밀에 한 발씩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에게 남는 것은 우주의 광할한 고독과 대면하는 일밖에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거대한 절대고독을 우리는 감당해낼 수 있는가? 먼 우주에서 보면 한낱 점, 한낱 먼지에 불과할 뿐인데?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거두었다. 김연수의 <원더보이>의 한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는 말한다. '그곳의 밤하늘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처럼 아름답지' 라고. 차디차고 메마른 과학적 사실과는 별개로 누군가는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밤하늘에게서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끝내 우리가 고독해질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 고독 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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