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슬픔

시월의숲 2019. 4. 17. 22:36

사람들을 만나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고 온 날은 어김없이 후회를 하게 된다.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말이 많아진다고는 하지만(그럼에도 늘 후회하곤 하지만), 오늘처럼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날은 더더욱 후회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멀쩡한 정신으로 내뱉은 말은 술에 취했을 때 내뱉은 말보다 더 오래, 더 생생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눈 당사자의 기억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그들은 내가 한 말의 한 단어, 한 음절까지 기억할지 모른다. 기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 오늘도 나는 쓸데없이 타인에 대해서 비방하고 평가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도 물론 내 말에 동조하기도 하고, 내가 어렴풋이 아는 어떤 이들에 대해 비방과 평가를 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대화가 시종일관 진지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볍게, 스쳐지나가듯이 누군가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는 더 진지해질수도 없고, 진지해질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를 험담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암울함과 희망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 수 없는 후회의 감정으로 몸을 떨었다. 나는 왜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에 대해서 그렇게도 친밀하게 험담을 할 수 있는지, 의아했고, 신기했다. 내가 한 말들이 나중에 나에게 돌아오리라는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평가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지, 그렇게 한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끝내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슬픔.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더이상 할 말이 없을 거라는, 너무나도 선명히 각인되는 서글픈 예감이었다. 우리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타인을 향한 험담과 자신의 안위, 자신들의 잣대로 타인을 규정짓고 강요하는 것 외에 무엇을? 후회의 끝에 다다른 감정이 결국 슬픔이라는 사실에 나는 더 슬퍼졌다. 나 자신을 향한 슬픔과 타인을 향한 슬픔이 나를 짓누른채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