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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었다. 공포영화의 외피를 두른 정치영화라고 해야할까. 무언가를 선동하려는 목적은 아니지만 결국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영화.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트릭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작인 1977년에 개봉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를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뉠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히 이 영화는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그렇다면 과연 원작과는 어떤 지점이 다를 것인가에 포인트를 두고 영화를 관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원작을 보지 못했다. 원작이 어떤 영화라는 것을 글을 통해서 대략 짐작만 한 채 영화를 보았다. 그것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수 없지만, 비교 대상의 영화를 보지 않고 단독으로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 어쩌면 내겐 이 영화에 대해서 보다 긍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1977년의 독일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당시 독일의 적군파나 바더 마인호프 등에 관한 것들을 일정 부분 숙지하고 갔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것들이 어째서 독일의 한 무용학원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겹쳐질 수 있을까 의아했다. 영화의 마지막 충격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왜 그 시대의 한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와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해설을 읽고 나서야 아, 그런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 시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봤을 때는(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라며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이건 공포영화가 아니잖아! 하면서. 듀나는 이 영화가 당시 독일의 시대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좀 과한 것 같다는 평을 했다.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한 티가 난다고. 내 생각도 그와 같다. 그것 때문에 공포영화의 기능이 많은 부분 날아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야심차고 때론 아름답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중심에 마담 블랑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이 있다. 그녀의 연기는 매번 경탄을 금치 못한다. 어떤 영화에 나오더라도 그녀는 캐릭터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 외 다른 연기자들도 다 조화로웠고 적절했다. 그리고 영화에 주요하게 쓰인 무용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용이 다름아닌 마녀들의 '의식'으로 쓰이는 방식이 흥미로웠고, 그것이 영화에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공포영화의 기능을 살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많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 그리고 음악! 나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톰 요크가 만든 이 영화의 OST를 구입해서 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 것은 아마도 음악 때문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