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시월의숲 2019. 7. 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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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는 싶었으나 굳이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감정인가? 어쩌면 반반이었을 것이다. 봐도 좋고 안봐도 그만인. 그것이 요즘 불고 있는 반일감정 때문은 아니었다. 그 생각 때문이었다면 소니에서 배급하고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스파이더맨>을 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막연히 <어벤져스 - 앤드게임> 이후의 마블 시리즈가 궁금했고, 요즘 팍팍한 내 생활에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숙직을 하고 난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고, 주말에 늦게까지 자는 내 패턴에서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인 요즘에 일본에서 배급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장황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찌할 것인가.


아무튼 이번에 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생각보다 실망이었다. 전체적으로 스파이더맨의 사랑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이번 영화는, 스파이더맨을 너무 미성숙한 어린애로만 그린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이언맨이 죽고 난 뒤, 그래도 조금은 성장한 것처럼 보이던 스파이더맨이 오히려 더 사리판단이 안되는 어린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영화를 보면서도 좀 답답했다. 아니, 왜 안경을 덥석 다른 사람한테 준거야? 물론 한창 젊고 열정이 넘칠 나이니까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이미 어떤 커다란 일이 가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텐데, 그에 대한 조금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또 조금만 알아보면 미스테리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닉 퓨리는 도대체 그 자리에서 폼만 잡을 줄 알지 할 줄 아는게 뭔가? 등등.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래저래 투덜거리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만 있엇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맨 마지막 두 개의 쿠키영상은 조금 충격적이고 했고, 앞으로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짐작케 하고,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오늘 미국 샌디에고 코믹콘에서 향후 마블에서 만들 영화들에 대한 캐스팅과 방향 대한 기사가 나와서 그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그들은 열심히 영화를 만들고, 나는 그동안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그 영화를 기다리고, 때가 되어 영화가 개봉하면 그에 맞춰 나는 영화를 보러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기다린다는 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혹은 촉진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것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책 혹은 사람, 앞으로 좋아하게 될 책 혹은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에 그것을 만날 때 더욱 기뻐할 수 있으려면, 지금 내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 


하긴, 그렇게 생각한다면 스파이더맨에게 그렇게 큰 짐(무려 아이언맨의 후계자라니!)을 지워주는 것도 어쩌면 부당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람들의 다정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이기 이전에 아직은 어린 학생일 뿐이니까. 세상을 구하고 나아가 지구를 구하라니! 그건 어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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