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기생충

시월의숲 2019. 6. 6. 21:54




(스포일러 주의!)


아버지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궁금해하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다 보고 난 후 우선 드는 생각은, 흔히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대중적인 재미는 덜하다는 선입견을 보란듯이 깨는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의 블랙유머는 꽤 재미있었으며, 보고 나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좋은 영화란 그런 게 아닐까? 무슨 유수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전에 본 서스페리아는 좋은 영화였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다른 말로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봉준호의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인(봉준호스러운) 인물들로 보다 글로벌(스탠다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평론가 듀나의 리뷰처럼, '지극히 박찬욱스러운(서구적인 이야기) 세계에 아주 봉준호스러운 인물들이 특유의 엇박자로 슬금슬금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리뷰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 너무나 적절한 설명 같았기 때문이다.


화제가 된 영화이니만큼 그 어느때 보다도 영화의 후기가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 중에 몇몇 후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냄새와 관련된 리뷰와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영화의 세계관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분석한 글이 그러했다. 그 글은 나또한 영화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이리라.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아버지에게 감상을 묻자 아버지는 왜 기택(송강호)이 박사장(이선균)을 죽여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왜 그런 결말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대뜸, 그건 냄새 때문이었어요! 라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냄새는 기택이 박사장을 죽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신은 어떻게 해도 올라갈 수 없는 최하계급의 숙명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개인이 어떻게 하더라도(기택의 모든 가족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사장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더이상 도달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 계급과 계급을 나누는 그것. 그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구조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까 그 냄새를 없애는 방법은 반지하방에서 벗어나는 길 뿐인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 속에서 기택의 아내 충숙은 말한다. 나도 돈만 있으면 주인여자보다도 더 착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주인여자처럼 돈이 많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도대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말이던가? 그러므로 기택의 가족들이 지닌 냄새는 그들의 숙명이 되고, 지문이 되고, 굴레가 된다.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그것을 깨닫게 된 기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기택의 칼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어쩌면 자명했다.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의 결말은 그래서 필연적인 귀결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분노의 표출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영화의 마지막 기우(최우식)의 웃음을 감독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자조이자 냉소의 표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감독이 수적적 구조의 계급사회를 타파할 어떠한 복안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저 냉소적인 웃음만을 흘릴 뿐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의 생각은 아마 이런 것이었으리라. 박사장을 죽였다고 해서 기택이 박사장이 될 수 있는가? 그는 그 사건 때문에 반지하에서 벗어나 오히려 완전한 지하로 내려갔을 뿐이다. 그런 그를 장남인 기우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기우는 영화의 마지막에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실성한 듯 느껴지는 웃음은 과연 그의 다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무척 흥미롭고, 이상하며, 이상하게 슬프고, 이상하게 킥킥거리게 되는, 한마디로 이상한 영화다. 감독 자신도 그렇게 말했듯이. 공생 혹은 상생하지 못하고 기생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을 그린, 참으로 기이하지만 어쩐지 쉽게 웃어넘기지는 못하는 그런 영화.



*

사족 - 오늘 뉴스룸에 봉준호 감독이 나와서 내가 앞서 언급한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이 영화가 도저히 만날 것 같지 않은 계급의 두 가족이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만나 부대끼면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냄새를 '서로간의 예의'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박사장은 기택에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무참히 짓밟혔을 때 우리는 과연 기택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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