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여름, 시간, 달과 별

시월의숲 2019. 7. 1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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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다지만, 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그리 무덥지 않아서 살만하다. 작년에 열대야로 인해 잠 못이루던 날들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올해는 아침 저녁으로 비교적 선선해서 아직까지는 숨을 쉴 만하다. 오늘 일기예보를 보니 본격적인 무더위는 7월 말이나 8월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아직 여름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칠월의 중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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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잘 흘러간다. 하긴, 시간이란 하는 일이 있든 없든 흘러가는 것이니까. 7월 1일자로 새로운 곳으로 부임을 받고 근무를 한 지 이 주일이 지났다. 이 주일이란 시간은 많은 일을 잊게도 하고 많은 일을 받아들이게도 한다. 나는 그동안 허물을 벗은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또다른 멍에를 짊어진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흘려보낸 것 같아 마음이 착찹하다. 다음 주 부터는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게 되는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 걱정을 좀 덜어내기 위해서 그동안 공부도 하고 고민도 했지만, 그것이 과연 내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알 수 없는 상태로 지금까지 온 느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제까지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시간을 멈춰 세울 순 없지 않은가?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도 계속 흘러간다. 흘러갈 뿐이다. 그렇게 흐르고 흘러서 결국 어디에 당도해 있을 지 알 수 없지만(그저 생각하기 싫은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흘러간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해서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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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에는 별빛여행이라고 해서 달과 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사였는데, 조명등도 만들고, 별자리에 대해서 강의도 듣고, 천체만원경으로 직접 달과 별을 보기도 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목성을, 달의 표면을 만원경으로 볼 수 있었는데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만원경으로 본 목성은 너무나 작게 보여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말로만 듣던 목성이라는 별을 직접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달! 달은 그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끔씩 생각에 잠기던 것이 다였는데, 직접 만원경으로 보니 달의 표면에 나 있는 울퉁불퉁한 분화구까지 너무나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놀라웠다. 달의 표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을 줄이야. 같이 간 동료는 데리고 온 아이들에게 달에 계수나무가 있는지,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보이는지 물었고, 우리들은 크게 웃었다. 하늘의 별은 많고 많았지만, 그 수많은 별들에 다 이름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하늘의 별은 오래 전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이었으리라.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가늠한 옛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놀라웠다. 그들은 정말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을까. 우리들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가까이 있는 곳이라도 헤매지 않겠는가. 새삼 나를 이끌어줄 별이 어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잃고 헤매일 때, 하늘의 별을 보고 잘 헤쳐나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