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망연자실

시월의숲 2019. 7. 6. 23:09

그저께부터 어제까지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셨다. 그저께는 새로 발령받은 곳에서의 환영회였고, 어제는 몇몇 친한 지인들과의 소소한 모임이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곳에서는 공식적인 술자리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에 옮긴 곳에서는 아무래도 공식적, 비공식적 술모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벌써 이틀 연속으로 마셨으니. 그게 좋은 일인지 싫은 일인지 모르겠다.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아닐지 모른다. 몸을 생각하면 술은 자제하는 것이 좋은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또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우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이틀 연속 마신 술로 인해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안사돈이 오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누가 왔다고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내 동생의 시어머니가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 왔다는 것인데, 아버지가 저녁이라도 같이 하자고 해서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혼몽하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내 차를 가지고 아버지를 태우고 약속 장소로 가서 동생 내외와 사돈어른을 만났다. 우리들은 저녁을 먹고 마침 그 동네에서 열리고 있던 축제를 구경했다. 조카들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고, 사돈어른은 오래 전 보았을 때보다 살이 좀 찐 것 같았다.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온 것 같았으나 희안하게도 그늘에 있으면 견딜만 했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용궁이라는 지명을 가진 작은 마을이었는데, 그곳의 순대가 유명했고, 오늘 열리는 축제 이름도 용궁순대축제였다. 플래카드를 보니 올해가 여덟번 째로 열리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곳에 살면서도 축제에 처음 와봤다. 축제장은 작고 부스도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주차단속을 하는 사람들이 그곳의 마을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그 사람들의 지휘대로 차를 운전했다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왼쪽으로 가려고 깜빡이를 켰는데, 옆으로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복잡함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초등학교에 들렀다. 조카들이 축구와 철봉을 꼭 해야한다고 다그쳤던 것이다. 축구의 축자로 모르는 나는 조카를 위해 공을 차주었다. 물론 대부분은 조카가 찬 공울 주워오는 것이 임무였지만.


그렇게 어느정도 공을 찬 뒤 우리들은 헤어졌다. 사돈어른께는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조카들에게는 할머니 말씀 잘 들으라는 부질없는 당부도 했다. 동생 가족들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드실 북어국을 끓이고, 냉장고에서 말라가던 애호박으로 볶음을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문서를 폐기한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기사였다. 아버지와 나는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랐으므로, 우리는 조금 언성을 높이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건 나도 놀랄 정도의 화였는데,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이상하게 나는 세월호가 나오면 이성적이 되지 못하고 감정이 격앙되고는 했는데, 아버지의 너무나도 무신경한 태도(세월호의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화가 났던 것이다.


감정을 추스리고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가. 왜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나는 또 왜 그런 아버지를 잘 알면서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런 감정들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서글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채 멍하니 차를 몰면서 어두운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하면서 컵을 깨트렸다. 그리 세게 부딪히지도 않은 거 같은데 컵의 손잡이가 깨져버린 것이다. 나는 깨진 컵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그 컵은 내가 삼 년 전 쯤에 일본에 가서 사 온 컵이었다. 컵을 사용할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곤 했는데, 추억이 깨져버린 것 같은 헛헛함을 느꼈다. 오늘 느꼈던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인가. 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나날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