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열등의식

시월의숲 2019. 7. 28. 17:06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듣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일까? 나는 그 사람을 추호도 비난할 생각이 없고,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가 받아들이기에 어쩌면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간접적으로 힐난하는 것처럼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그저 내가 겪고 느낀 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나는 어떤 이들의 우월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그는 상대편 사람들이 가지는 열등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억울하다고 느낀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느꼈던 우월의식이라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그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도 직접적으로 나를 향해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말한 나 자신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도, 내가 아무런 의식없이 제 3자에 대해서 한다고 한 말이 그 자신을 향해 하는 말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정말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란 것이 그런 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고, 걱정스러웠고, 억울했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가 한 말의 맥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내가 한 말의 의도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불편한 마음 때문에 잠까지 설쳤다. 새삼 글이란 어떤 것인지,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저변에 깔린 의식을 내가 마음대로 꺼내서 재단하고 판단하고 평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은 그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이상 발설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정말 나 자신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내가 속한 좁은 우물 속 세계만을 보고 쓴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양 착각하면서 짐짓 다 아는 척, 사람이란 이런 존재이고,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냐는 등의 낯간지러운 말만 내뱉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순간 모든 것이 다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알량한 변명 아닌 변명의 글 조차도. 그래, 지금 나는 나 자신이 무척 창피한 것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한 조각  (0) 2019.08.10
월영야행  (0) 2019.07.28
점심을 먹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잠을 잔 이야기  (0) 2019.07.24
여름, 시간, 달과 별  (0) 2019.07.14
망연자실  (0) 201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