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두려움을 없애는 두 가지 방법

시월의숲 2019. 6. 2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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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없애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두려움을 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방법 또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두려움에 몸을 맏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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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처음 하는 일을 두려워하곤 했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일, 처음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일, 처음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는 일, 처음 누군가와 밥을 먹는 일, 처음으로 맡은 업무 등등. '첫'자가 들어가는 일을 해야할 때면 나는 남들보다 더욱 경직되고, 머리가 마비되고, 불편해지고,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 모든 부자연스러움이 나는 싫었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워하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스스로 인정하긴 싫지만,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안다. 왜 두려워하는가?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묻지만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누구나 새로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런 두려움이 없거나 아주 손쉽게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감을 가져! 그들은 내 어깨를 툭 치며 그렇게 충고한다. 마치 그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소심함이 무척이나 우습다는 듯이. 나는 그들의 아무렇지 않은 충고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그들의 무신경함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자신감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인가?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었던가?


아, 이런 말을 하려던건 아니었다. 이건 징징거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더이상 투정부리지 않겠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 마음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두 가지 방법 중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그 두려움에 몸을 맡기는 것. 피할 수 없어서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마치 자발적 선택인냥  포장하고 있는거 아니냐고 비난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선택이 아닌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수도 있는 거니까.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가면 된다. 뚜벅뚜벅 걸어가다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두려움이지만,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점차 무뎌지고 잊혀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 진리를 믿고,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마음껏 두려워 하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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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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