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조커

시월의숲 2019. 10. 9. 01:20




한 달 전이던가? 예고편을 보고 매료되어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니! 그 소식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졌다. 드디어 개봉한 영화 <조커>는 현재 흥행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굉장히 인상적이고 재밌게 보았다. 영화의 영상미나 메시지는 차치하더라도,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었다.


<조커>는 코믹스에 바탕을 둔 안티 히어로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굉장히 민감하고 정치적이었으며(그래서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속 조커만큼 광기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그와는 다른 색깔의 페이소스가 더해져 있었다.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는 조커로써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면(그래서 그의 눈부신 광기에 매료되었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서서히 조커가 되어가는 모습을 무척이나 장대하고 드라마틱하게 그려보임으로써 조커의 내면에 보다 더 깊숙히 다가갈 수 있었달까. 한 인물의 다층적인 면모와 응축된 광기가 서서히 폭발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베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들은 처음부터 악당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늘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나 사회적 혹은 개인적 원한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악당이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베트맨 시리즈의 빌런들에게(특히 이번 영화에서의 조커에게) 조금이나마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도 인간적인 반응이 아닐까? 지금 <조커>를 본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악을 칭송한다거나 폭력을 미화한다는 따위의 생각이 아니라 말이다.


조커의 광기를 어떤 면에서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가도 마냥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 발언들, 즉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대변하는 듯한 말들이 커다란 대의나 신념 혹은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앓고 있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신질환자를 영화 속 고담시가 어떻게 대했는가 생각해보면(복지예산이 삭감되어 그는 더이상 상담을 받을 수도 없고, 약을 탈 수도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상담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또한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못하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슬펐는데,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폭도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폭죽과 연막탄을 터뜨리며 마치 축제를 하듯이 뛰어다닐 때, 폭도들에 둘러싸인 조커가 화면을 향해서 짓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웃음 때문이었다(어떤 기자는 그 모습을 '대관식'에 비유했다). 그는 늘 웃고 있지만, 늘 울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실제로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웃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가 예고편에서 말한, '내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코메디야' 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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