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캣츠

시월의숲 2019. 12. 26. 00:09

 

 

뭐랄까, 이 즈음에,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시즌에 참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막연하고도 은밀한 기대감과 알 수 없는 들뜸, 행복에의 예감, 혹은 감동에의 예감 같은 것들이 뒤섞이는 이 즈음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캣츠가 영화로 만들어져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을 했는데 어찌 보러 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거리는 성탄절 기분을 느낄 수 있을만큼 흥겹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계획을 세워 성탄절을 보냈다. 물론 성탄절과 나는 무관하고, 단지 그것은 휴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일단 어제 술을 마셨으니 오늘은 오전내내 잠을 자고 점심때쯤 일어난다. 일어나서 시간이 나면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예매해 둔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선다. 영화관에 도착해서 예매한 영화의 번호를 입력하고 표를 발급받는다. 팝콘과 음료를 사서 극장으로 들어간다. 영화를 본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와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저녁을 먹자고 말한다. 차를 몰고 아버지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 크리스마스 계획이었다. 계획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만 계획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화관에 갔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 때문에 팝콘을 다 먹을 수 있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어떤 내용인지 다 알았기에 영화의 내용에 집중한다기보다는(사실 내용이 중요한 뮤지컬은 아니다)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뮤지컬의 펄떡이는 날 것의 에너지를 영화가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까, 혹은 뮤지컬이 보여주지 못하는 스펙터클한 영상을 영화가 얼마나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지루한 뮤지컬의 흐름을 영화가 잘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영화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혹평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대로 뮤지컬이 보여주지 못하는 영상의 스케일과 아름다움을 잘 구현해내었다고 생각한다. 다소 지루한 듯한 뮤지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영화는 보다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로 내용을 압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감정의 흐름은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잘 잡아내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도 나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확실히 캣츠의 가장 큰 주인공이자, 감정을 흔드는 것은 그 어떤 고양이도 아닌,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Memory'라는 노래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 노래 하나만으로도 캣츠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캣츠를 보는 동안에는 영화 속 고양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몸짓, 그들의 노래, 그들의 외모 그 모든 것들을.

 

'봄날은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아씨들  (0) 2020.02.15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0) 2020.01.12
나이브즈 아웃  (0) 2019.12.08
조커  (0) 2019.10.09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0) 2019.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