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법 추워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신경에 거슬릴 정도였다. 나는 패딩점퍼의 목부분을 한껏 끌어올려 코를 막은 뒤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 전에 걸린 감기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으나, 너무 집에만 있어서 더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영화를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여 극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저녁에 영화를 보는 것은 내겐 드문 일이었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없으면 하지 않았을테지만, 마침 요즘 나온 영화 중에 <나이브즈 아웃>이라는 영화가 내 흥미를 자극했다. 현대가 배경이지만, 애거사 크리스티의 탐정 추리물처럼 무척 고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민자와 불법체류자, 백인 우월주의 문제 등 지금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도 영화 속에 적절히 녹아 있어서 단순히 범인이 누굴까에만 생각의 범위가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나서 또 한번 더 보고 싶어지는 영화랄까.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아픈지 생각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과 마음이 점차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픈 몸은 그대로 놔두고 정신만 또렷이 일어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 아무튼 모처럼 재밌는 영화를 봤다. 때론 이런 즉흥적인 선택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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