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화가 나는 이유

시월의숲 2019. 12. 28. 22:28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올라 책 읽는 것을 방해한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오늘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하고, 내가 처했던 어떤 상황과 그 상황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시선 혹은 태도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이미 다 파악했고, 그것은 그것대로 다 이해할만다하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과의 대화는 종종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화를 치밀게 한다. 내가 화가 난다는 사실이 정말 진저리나게 싫지만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아직 잘 다스리기가 힘들다. 아직도 수양이 필요한 걸까? 아니, 어쩌면 수양이란 것은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법 말이다. 내가 유독 화가 나는 것은 아무래도 상대방이 나를 업신여기거나 무례하게 굴 때가 아닌가 싶다.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한계치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너무 심한 장난은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고 화가 나게 만들지 않느냔 말이다. 어쩌면 상대방은 그것을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 알면서 악의적으로 약을 올릴 때까지 올리다가 상대방이 화를 낼 것 같으면 바로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내 너그러움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책을 읽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 혹은 산책을 할 때 불쑥 어떤 기억이 떠올라 화가 난다면 그건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나 자신의 탓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불쾌하다는 것이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나는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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