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인간 혐오

시월의숲 2020. 1. 30. 23:42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요즘들어 '인간 혐오'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지극히 자조적인 '인간 실격'이 아니라 다소 공격적인 '인간 혐오' 말이다. 내 주위의 모든 말들이 전부 나를 공격하고, 곤궁에 빠뜨리려고 하며,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상처를 내려고 안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은 지나친 망상인가?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고, 어딘가 불편하며, 무엇을 해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때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이없고 허탈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이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어. 혹은 혼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걸거야. 일종의 히스테리인거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상처를 주는 말이든, 어설픈 위로의 말이든 간에,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솟구쳐 오른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존재일뿐. 어쩌면 내가 너무 터무니없는 기대를 한 탓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사람들을 피해서 자꾸 혼자 있을 곳을 찾게 된다. 그들과의 대화는 극도의 피로를 동반하고, 아무런 사심없는 대화라 할지라도 우리가 하는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나, 어조, 목소리, 억양, 떨림, 뉘앙스에 묻어있는 오해와 무심한 상처들은 나를 인간을 혐오하는데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그들은 왜 나를 모함하는가? 그들은 왜 나를 무시하는가? 그들은 왜 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왜 나를 마냥 좋은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가?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 경계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인격에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좋은 사람이 쉬운 사람이 되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생각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자신도 싫다. 혐오스럽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그들의 말이. 그들과의 대화가. 우리는 영원히 오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아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 오해가 인간을 혐오하는데까지 나아간다면. 어쩌면 나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체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있을 때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계속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한다. 어쩌면 나는 '인간 혐오'로 인한 '인간 실격'인가? 하긴, 인간을 혐오하는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써 실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도저도 아니다. 좀 더 극단적이고 싶다. 좀 더 자조적이고 좀 더 독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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