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풍경

시월의숲 2020. 2. 29. 22:04

금요일 아침 당직휴무를 내고 사무실을 나왔다. 마침 그날은 자동차 수리가 예약되어 있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차를 끌고 서비스센터로 갔다. 직원의 말로는 차를 수리하는데 대략 네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아홉시 삼십 분도 채 안되었다. 카페에 가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 같아(코로나 때문에 문을 여는지도 알 수 없었으므로) 서비스 센터에 있는 대기실에 앉아 한 삼십 분 정도 있다가, 직원에게 차 수리가 다 되면 전화를 달라고 부탁을 하고 대기실을 나와 번화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 이 삼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도 휴관이었으므로, 허탈하고 난감한 마음을 이끌고 일단 걷기로 했다. 걷다가 문을 연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차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으리라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숨 쉬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걷기 힘들었다. 연신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면서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금요일이었고, 오전이었으며, 전국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였으므로, 당연히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지나는 길에 있던 아파트 공사장의 인부들만이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서로의 얼굴과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전염이라는 것이 이렇듯 서로를 멀어지게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오로지 거리를 두는 것, 멀어지는 것만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니. 그것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날은 흐렸고 급기야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급격한 허기가 느껴졌다. 커피 보다는 샌드위치 같은 것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내가 햄버거 가게 근처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무인 주문기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게에는 나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연인처럼 보였다. 세상에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없고, 우리 둘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아! 라고 외치듯 마주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게 제일 구석에 앉아 햄버거와 콜라, 감자튀김을 먹으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드물게 사람들이 지나갔다. 자동차를 수리하는데 네 시간이나 걸린다고 했으므로 나는 햄버거 가게를 나와 또 걸었다. 걷다가 문이 열려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평소 사람들로 가득차던 카페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두 명 있었다. 주문을 하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자동차 수리가 다 되었다는 서비스 센터 직원의 전화였다. 나는 종업원에게 커피를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서비스 센터를 향해 걸었다. 이상하게 무중력의 공간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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