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는 것처럼

시월의숲 2020. 3. 22. 22:49

햇살이 따사로웠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여기 내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었다. 고향에 있는 집 근처 경찰서 마당에 심겨져 있는 목련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시작을 알렸다. 제일 먼저 피었다가 제일 먼저 지는 하얀 목련꽃을 볼 때마다 나는 약간 경건한 마음이 들곤 한다. 아, 산수유가 피어있는 것도 보았다. 올해 산수유 축제는 열리지 않았지만, 산수유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면이 시키는대로 꽃을 피웠을 것이다. 사람이 보든 안보든 아무런 상관이 없이. 


토요일 오후에는 오랜만에 냇가를 따라 산책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라는 말 자체가 오랜만인듯 느껴졌다. 코로나의 여파로 집에만 있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집에서만 지내는 것이 더욱 힘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에서도 충분히 지낼 수 있지만, 지금의 햇살은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기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날씨를 아까워하고 있을 것이었다. 새롭게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지금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산책을 나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어쨌든 마스크를 쓰고 봄이 오고 있는 냇가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집 근처의 냇가를 따라 걷는 산책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보였는데,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스크 너머 얼굴은 따사로운 햇살과 피고 있는 꽃들로 인해 한껏 여유로운 표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 그랬으니까. 포근한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고, 개나리와 산수유가 피어있고, 냇가의 억새풀 위로 참새떼들이 포르르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백로로 보이는 하얀 새가 냇가의 얕은 물 위에서 예의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먹이를 잡고 있다. 그런 풍경 속에서라면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냇가를 걸었다. 걸으면서 봄이 찾아오고 있는 풍경들을 쫓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봄은 오고 있음을 자연은 말해주고 있었다. 문득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정치적이고 선동적이며, 거짓과 위선, 공포와 혐오로 점철된 말들보다 자연이 우리에게 하는 말에 더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처럼, '바람의 노래를 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하루키의 소설은 지금 이 상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지만 말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첫 문장  (0) 2020.04.12
지금은 벚꽃의 계절  (0) 2020.04.04
어떤 풍경  (0) 2020.02.29
보이지 않는 것  (0) 2020.02.23
인간 혐오  (0) 202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