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코로나 시절의 일상

시월의숲 2020. 4. 30. 18:21

그야말로 코로나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가 모든 일상을 장악하고, 지배하고, 잠식한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지만, 누군가 이야기했듯,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이런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또 우리나라에선 자가격리를 위반한 사람에게 안심밴드를 착용한다는 뉴스도 있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검진 방식은 이제 당연하거나 일반적인 것이 되어 버렸고, 수시로 보내오는 재난문자에도 그리 놀라지 않게 되었다. 이제 확진자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오히려 외국에서 유입되는 사례가 더 늘고 있다. 이번 징검다리 연휴에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이 18만 명이나 될 거라는 소식도 들었다. 강원도 지역의 펜션은 연휴기간 거의 예약되었다는 소식도. 아마도 해외에 가지를 못하니 국내 여행으로 눈길을 돌린 모양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코로나로 인한 두려움은 이제 조금 익숙해졌거나, 식상한 것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줄어든 확진자 수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연일 우리나라의 방역시스템을 칭찬하고, 우리나라의 검진키트를 100여 국이 넘는 나라에 수출한다는 소식 등이 들려오니 조금 안심하는 마음이 생겨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직은 코로나의 시절이고, 장기전을 대비한다는 정부의 말처럼 어쩌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우리의 자유는 여전히 침해당하지 않았으니, 마스크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마스크를 쓰고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


지난 이 주 동안 나는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여파로 계속 미뤄지고 있던 일들을 몰아치듯 했다. 시간을 두고 하던 일들을 이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이 피곤해서, 오늘은 모처럼 맞는 주중 휴일이었지만 오후 늦게까지 잠만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났지만 누적된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몸이 찌뿌둥하고 살짝 두통이 인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창 밖으로는 눈부신 햇살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저 멀리 산을 보고 있으니, 내가 사는 곳 인근에 큰 산불이 일어나 축구장 천 백 개가 넘는 면적이 불탔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축구장 천 백 개는 과연 얼마나 되는 크기인가, 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따뜻한 햇살과 산불 소식은 얼마나 큰 괴리감을 주는지.


살짝 두통이 일었지만 눈을 감고 두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눈을 떴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지만 절에서 매년 하던 행사를 5월달로 미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어떤 신앙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늘이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그런지, 이 코로나의 시절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조금은 간절한 마음이 된다. 저 따스한 햇살 속에도, 불어오는 바람 속에도, 수줍게 얼굴을 내민 여린 잎사귀 속에도 당신이 존재하신다면, 부디 보살펴주시기를. 우리가 가진 모든 번뇌에서 조금이라도 놓여날 수 있기를. 이 코로나의 시절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아, 맞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지역에서 지급하는 공적 마스크를 받으러 관리 사무소에 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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