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가 두려워 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월의숲 2020. 5. 10. 19:39

혐오와 비난, 저주의 말들이 쏟아진다. 마치 욕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혹은 상대방을 죽일듯이 욕을 퍼부어야만 기분이 풀린다는 듯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거친 말들을 쏟아낸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마땅하나, 그것이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혹은 잘못과는 상관없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인 비난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은 집단적인 광기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왜 주술적인 광기에 휩싸여 본질과는 다른 것들을 향해 비난과 혐오의 말들을 퍼붓는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가? 보이지 않는 두려움으로 인해 누군가를,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까지 재물로 삼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것이 과연 정상인가? 그것이 정의인가? 이번 이태원 클럽에서 나온 확진자에 대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읽다가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고 말았다. 선동하는 기사와 그것에 적극 호응하는 댓글들. 우리나라가 코로나의 적극적인 대처로 인해 국격이 높아지고, 방역 모범국으로써의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들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아직도 후진적이지 않은가? 

 

이것은 비단 이번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에서 나온 확진자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지적에서 벗어나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더 나아가 이념 대립으로까지 몰고가는 사람들, 특정 종교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것에서 벗어나 종교인 전체를 매도하는 사람들의 거친 말들도 매한가지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우리는 좀 더 이성적이어야하지 않을까? 좀 더 차분하게 전후사정을 돌아보고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 않은가? 비난과 혐오가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수전 손택은 말했다.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물론 이 말은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로 인해 미국 정부와 지식인들, 유력 미디어들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따져 보지 않고, 미국만이 정의이며, 미국만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임을 앵무새처럼 지껄여대는 현실에 대한 수전 손택의 일침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이 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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