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온 우주의 문을 열어 너에게 갈께

시월의숲 2020. 6. 13. 00:22

<더킹 - 영원의 군주>가 오늘 끝났다.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 이후 나온 김은숙 작가의 기대작이었는데, 전작들만큼의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대체로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은 것 같다. 평행세계라는 소재를 끌어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전작들에 비해 로맨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개연성이 없다는 등의 불평이 많은 것이다. 급기야 <도깨비>와 비교하는 기사까지 보고 나서, 나는 의아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결국 재미가 없다는 말인가? 그런 비판들에 대해 일부 수긍을 하면서도, 그래서 결국 재미가 없다는 말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아니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고, 거의 다 챙겨보는 편인데, 유독 그리도 유명했던 <도깨비>를 보지 못했다(왜 그랬을까?). <도깨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더 킹>에 대해서 더 관대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끝난 <더 킹>만 놓고 본다면, 그리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없고, <더 킹>을 향해 쏟아지는 불평 불만들이 어딘가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오히려 <미스터 션샤인>의 로맨스보다 <더 킹>의 로맨스가 더 가슴이 아팠다. <미스터 션샤인>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보는 동안 감정이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부분이 많았는데, <더 킹>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그리 매끄럽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행세계의 문을 여는 피리가 존재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존재하는 전혀 다른 세계를, 피리로 자유로이 넘나들면서, 한 쪽 세계의 또다른 나의 삶을, 다른 세계의 내가 훔치는 설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차원을 넘나드는 로맨스가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그것은 어쩌면 꿈보다 더 슬픈 꿈으로 끝날 수도 있는 비극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하고도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는 두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커다른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대한제국에서의 이곤이 대한민국의 정태을에게 말한다. '온 우주의 문을 열어 자네에게 갈께'. 나는 어째서 이 대사가 그리도 슬프게 들리는 것인지.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오래전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결말에서 느꼈던 어떤 슬픔이 <더 킹>에서도 느껴졌다. 온 우주의 문을 열고 나에게 오기까지 당신은 얼마나 많이 고독했을지, 그 아득한 시간을 어떻게 한 가지 생각만으로 버텨낼 수 있었는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상상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비극적이면 비극적일수록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절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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