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

시월의숲 2020. 6. 27. 22:22

어느덧 이천이십 년 유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7월 1일자 인사이동으로 인해 우리들은 이맘 때만 되면 늘 그랬듯, 송별회를 몇 차례씩 했다. 가는 사람들은 잘 있으라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해야했고, 가지 않는 사람들은 잘 가라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해야했다. 나는 가지 않는 사람쪽에 속해 있어서, 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잘 가라고 말했고, 그들은 나에게 잘 있으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인사발령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해야하는 이런 행사가 어쩐지 불필요하다 생각되기도 했고, 그동안 함께 있었던 동료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유월이 가고 있다. 

 

나는 '가지 않는 쪽'이지만, 사무실 내에서 자리를 옮겨야 할 처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가 당연히 내가 가야하는 자리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가야 하는 자리인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내가 가야하는 자리가 따로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리가 그 사람의 현재 위치 혹은 위상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현재로서 내가 가야할 자리는 반드시 거기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쨌거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자리로 나는 가게 되었으나, 그만큼 내 생활의 여유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우울했다.

 

나는 특히 직업이라는 것에 나를 바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그 생각이 나를 옥죄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나는 정말, 일에 관한 생각으로 하루 종일 보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7월부터 새로이 맡게 되는 그 일이 나를 옥죌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해서, 유월의 마지막 주말임에도 나는 조금 침울해진다. 그리고 급기야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이다.

 

배수아는 그의 소설에 이런 문장을 썼다. '모든 직업은 우울하다'고. 이 말은 오래전 내가 그것을 읽었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래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그 문장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문장이 떠오른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이나 슬프지만, 그런 문장을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나는 지금 일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다른 것, 그러니까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 같은 것을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지금 직업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사치스러운 말로 들리겠지만.

 


 

모든 직업은 우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그 직업은 우울하며, 필연적인 우울을 유발한다. 은퇴와 죽음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우울.(배수아, 『올빼미의 없음』, 194쪽,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