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한 시절, 내 몸의 일부였던

시월의숲 2020. 6. 7. 00:31

지난 목요일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 퇴근 시간을 한 시간도 채 남겨놓지 않고, 화장실에 가다가 마스크를 잠시 벗는다는게 안경까지 같이 벗겨지면서 땅에 떨어졌고, 안경테가 깨진 것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생각해야했다. 뿔테를 끼고 있었는데, 어떻게 정중앙의 연결부분이 딱 부러졌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 몸의 일부처럼 착용하던 안경이 갑자기 깨져버리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심정이 되었다. 동료들에게 5초 본드가 있는지 물었고, 스카치테이프로 잠시라도 보수를 해보려고 했으나, 본드도 찾지 못했고, 스카치테이프로도 붙여지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자신이 퇴근할 때 안경점까지 태워줄테니 안경을 새로 맞추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구원같이 들리는 그 말에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래, 그건 정말 구원이라 할밖에. 안경 하나 없을 뿐인데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 자신이 어쩐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갑자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 머리가 다 아팠다. 퇴근시간까지 남은 삼십 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그날 바로 안경점으로 가 안경을 맞추었고, 동료는 내가 안경을 고르는 것까지 봐주었다. 재난 지원금을 안경 맞추는데 거의 다 쓸 줄이야.

 

부러진 안경을 버리겠냐는 안경점 사장님의 말에 그냥 가져가겠다고 말했더니, 투명 봉투에 고이 넣어 주셨다. 이 안경을 얼마나 썼더라. 5~6년은 넘게 썼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쯤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 안경을 썼으면 이젠 새로운 안경을 맞출 때도 되었겠지. 사장님은 나 같은 손님만 있으면 안경점 망하겠다고 우스개소리를 했고, 나는 그러게요, 오래 쓰긴 했나 보네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한 시절 내 몸의 일부였던, 하지만 지금은 반으로 갈라져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버린, 내 오랜 안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잘 가라는 인사를 해야겠지. 오랜시간 내 눈이 되어줘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이젠 편히 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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