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피

시월의숲 2020. 8. 17. 23:16

내 가족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닮았다. 아니다. 그보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용암을 닮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평소 느꼈던 가족들에 대한 불만과 서로에게 받았던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서 더이상 쌓아놓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그 순간은 전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연휴 동안 모처럼 가족들과의 모임에 즐거워야 할테지만, 우리들은 그 짧은 시간조차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고야 말았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어이가 없었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눈물을 흘렸다.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야!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너는 네 생각만으로 행동하며, 결국 그것이 다른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목청껏 서로를 향해 퍼붓던 말들도 결국 끝나고, 남은 건 이상하게도 어떤 후련함이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서로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냥 그렇게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내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글거리는 태양이다. 아니다. 그보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용암이다. 폭발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상처를 입지만, 폭발하고 나서는 무엇보다도 견고하게 굳어버리는 암석처럼. 그렇게 녹았다 굳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어쩌면 내 가족의 숙명인 것만 같다. 뜨거운 마그마의 피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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