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고,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시월의숲 2020. 12. 12. 23:51

겨울, 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제 완연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겨울인지, 가을의 잔상인지 혹은 꿈 속인지 알 수 없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그마저도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릴 수 있을 때에야 입 밖으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이런 저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제가 말을 실수했군요. 저도 저를 이해할 수 없는데, 누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저를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요구일테니까요. 어쨌든 온통 갈색과 회색빛의 겨울의 통로에서 당신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정말 오랜만의 안부라 제 자신도 얼떨떨할 정도이니, 제가 횡설수설 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제 근황에 대해서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살아있고, 여전히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득 이 삶이 누구를 위한 삶인가 궁금할 때가 있지만, 그려러니 하고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겠지요. 제 삶을 제가 스스로 팍팍하게 몰아붙인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단순하게 살고 있지만, 그 단순함이 때로 저를 궁지에 빠뜨리는 것 같아 저 스스로도 의아해지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궁금해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여유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자문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계속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생의 전환이라는 생소하지만 다소 극단적인 그 단어가 지금의 제 나이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함부러 붙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생이 전환되는 나이를 맞이해서 종합검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종합검진은 일반검진에 비해서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더 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좀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생의 전환이라는 단어에 비해 검사는 무척 조촐하고 시시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아보니 전반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할 부분이 있고, 내과 상담을 권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과로를 피하고 운동을 하라는 주문은 매번 같았습니다. 하지만 삶이란 건강검진 결과표에서 권하는대로 되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아,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합시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말씀이신가요? 제 책상 위에는 늘 책이 있고, 저는 하루 몇 페이지라도 계속 독서를 하려고 하지만, 요즘들어 그게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제 불만은 어쩌면 거기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있는데, 거의 두 달이 지나도록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책이 재미없는 건 물론 아닙니다. 처음 접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그 책은 무척 매력적이고, 잘 읽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그건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 삶이 누구를 위한 삶인가 궁금할 때가 많아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 말은 즉, 책을 읽을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는데 있겠지요. 아, 이건 핑계인 걸까요? 하지만, 퇴근을 하면 너무나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워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아닌가요?

 

저는 당신의 삶이 궁금합니다. 당신의 건강과 당신이 읽는 책, 요즘 즐겨듣는 음악과, 당신이 먹는 음식과 당신이 자주 가는 카페와 자주 걷는 거리가. 그리고 궁금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저는 늘 당신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당신인가요? 당신의 삶은 당신이 아닌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은지요? 그것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하루에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아시겠지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당신은... 하지만 당신은 누구인가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고,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당신, 당신은 도대체...

 

오래전에 제가 당신에게 썼던 편지글이 생각납니다. 그 편지의 말미에 쓴 글을 다시 한 번 쓰고자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편지의 마지막은 같은 마음이니까요.

 

  "이것이 내가 당신께 전하는 안부입니다. 이런 것도 안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늘 그렇듯, 이 편지는 부치지 않을 것입니다. 부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나는 늘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부디 평온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나, 나는 곧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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