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처음 만나는 대화

시월의숲 2020. 12. 26. 23:24

세상은 코로나로 들썩이고,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는 조용하다못해 을씨년스럽지만, 내게는 나름 떠들썩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여러 우연들이 겹쳐서 조금은 특별한 크리스마스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족들과 보낸 크리스마스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블랙 타이거 새우를 구입했고,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하나씩 샀으며, 케익도 샀다. 동생의 생일이 연말이기도 했고, 마침 크리스마스에 온다고 하길래 생일 축하겸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년회를 하게 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를 두고 하는 발언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혹은 의례적으로 하는 발언이라는 것은 때로 지나치거나 불필요한 격식처럼 느껴져서 공식적인 자리 외에 가족끼리 있을 때는 잘 안하게 되는데, 어쩌면, 가족끼리 있을 때 그런 발언들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나는 이 생각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동생 가족들과 아버지가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 떠올렸다.

 

우리 가족들은 자주 모이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나 편한 나머지 오히려 서로에게 다정하지 못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씩은 다들 그렇지 않은가?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가족들에게는 더 혹독해지거나,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더라도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은 경우 말이다. 그게 어쩌면 편하다는 것의 맹점이 아닐까 싶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편한 관계여야 하지만 때로 타인에게 하듯, 의례적일지라도 따뜻한 위로와 칭찬의 말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우리들은 격식을 걷어낸, 솔직하고 장난스러우며 거침없는, 서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물론 다는 아닐지라도) 대화를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격려의 말은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극히 소극적으로 하고 말았다. 남들에게는 잘도 표현하는 그런 말들을 왜 가족들에게는 그리도 하기 힘든지. 참으로 이상하고도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J야, 생각해보니, 나는 늘 네게 무심했구나. 내 삶에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늘 너를 챙기지 못하고 네가 받는 상처를 보듬지도 못했구나. 미안하다.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말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는 걸 이제서야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란다. 아무튼, 생일을 축하하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일을 하길 바라고, 새해에는 지치지 말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 역시 그러하기를."

 

내년 소망을 하나 말해본다면, 속에 있던 못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하나. 매 번 내가 저녁을 사다가 한 번은 아버지가 저녁을 사서 내가 아버지에게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말을 하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순간 나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가족끼리의 대화라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