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인간을 비추는 거울

시월의숲 2021. 1. 15. 23:23

인공지능 챗봇인 '이루다'의 서비스가 잠정 중단되고 데이타 베이스와 딥러닝 모델도 완전히 폐기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 '이루다'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바로 혐오였다. 나는 인공지능 챗봇이 혐오 발언을 했다는 것과 사람들이 이루다를 향해 쏟아내는 성희롱 발언들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인간임이 한없이 부끄럽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로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구제불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그런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차별과 혐오의 언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자조적인 생각도 든다. 누군가 쓴 기사처럼, 이루다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 전에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우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존엄한 인간이 어째서 차별을 하며 혐오의 언어들을 마치 장난치듯, 아무렇지 않게 쏟아낼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한 존엄인가? 뉴스와 기사를 본 후 며칠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앞서 이야기했지만, 내가 인간임이 무척 부끄러웠다는 사실. 인공지능 '이루다'는 바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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