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시월의숲 2021. 6. 30. 23:18

유월의 마지막 날이다. 사무실에서는 오늘 하루 종일, 인사발령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의 작별 인사가 주를 이뤘다. 떠나는 사람이 인사를 하고 가면, 좀 있다가 떠나는 또 다른 사람이 인사를 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떠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잘 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어수선했지만, 유난히도 조용한 날이었다. 나는 남는 사람에 속해 있어서 마음의 동요는 덜했지만, 잘 대해주던 직장 상사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잠시지만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껏 수없이 떠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어도 울컥하지는 않았는데, 오늘,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에 나 자신도 의아했다. 아마도 그 사람을 향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내면에서 불현듯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늘 의문이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 순간 눈물을 흘리는가. 지극히 사무적이고 공적인 조직 속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일뿐인데, 왜 어떤 이들은 저렇듯 서럽게 혹은 저렇듯 슬프게 눈물을 흘릴수가 있는가. 나는 내 속에서 잠시 울컥했던 기분과는 별개로 직장 동료가 인사이동으로 근무처를 떠날 때 늘 울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도 전혀 울 것 같지 않던 사람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작별의 순간 감정이 격해질 만큼 친하게 지낸 사람이 없기 때문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과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아보면 나는 늘 누군가 한 발자국 내게 다가서려 하면 두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나는 인간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감정이 깊어져 서로 힘들게 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했다. 나는 단순한 관계가 좋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서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심리적인 거리를 원했다.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는 어떤 농담이라도 좋았다. 우연히 같은 곳에 만났다가 짧은 시간 함께 보내며 곧 헤어질 우리들인데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직장생활에서뿐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관계가 좋았다. 더 이상 너를, 더 이상 나를 파고들지 않는 관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관계(그런 걸 관계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깊은 관계란 깊은 수렁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이라니! 

 

매번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 또 익숙하게 느껴졌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떠올랐고,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가 떠올랐다. 장 주네의 <도둑 일기>도 떠올랐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도 불쑥 떠올랐다. 아무런 맥락도 공통점도 없는 그런 책들의 제목이 불현듯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지금 나를 불쌍하다 여기고 있는 것인가. 나는 거추장스러운 인간관계가 싫어서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데 무슨 거추장스러운 인간관계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 아닌가! 나는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어딘가 잘못되었지만,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모른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가 생각했던 곳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있는 자신을 느끼고는 어딘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자신의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기 위한 여행을. 아무런 용기도 깨달음도 없는 나는 그저 이 상태로 계속 살게 되겠지만.

 

그런데 정말 눈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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