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계절을

시월의숲 2021. 7. 10. 16:41

호우주의보와 폭염주의보가 발효중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특보까지 발효중이라고 한다. 조금 전부터 내가 사는 이곳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후덥한 날씨와 따가운 태양볕에 이제 정말 여름이 온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나는 미처 여름인지, 봄의 연장인지 그저그런 날들의 연속인지 알지 못한채 흘러온 기분이 든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연일 장마니 폭염이니 이야기를 해도 별 실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비가 오면 비가 오는가 보다, 햇볕에 피부가 따가우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 것이다. 특별히 여름이구나! 하는 걸 느끼지 못했다고 해야할까. 현실과 꿈 속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흐릿하고 몽롱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계절에 대한 자각이 둔해지고, 모든 감각들이 녹이 슨 것처럼 무뎌지고 흐물해지고 녹아내린 기분이다. 

 

7월도 중반을 향해 가고 있지만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들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올 여름은 마치 작년 여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에는 장마인가 태풍으로 인해서 소가 떠내려가 급기야 지붕에 올라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게 작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 소의 둥그런 눈망울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오늘 오는 이 비가 마치 작년에 온 그 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계속 비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마치 우리 내면의 저 깊고 어두운 곳에서는 언제나 비가 내리는 곳이 있는 것처럼.

 

하지는 오래 전에 지나갔고, 내일은 초복이라고 한다. 하지를 기점으로 낮이 조금씩 짧아진다고 하는데,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에 낮이 조금씩 짧아진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삼복 더위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낮이 짧아진다는 말은 밤이 길어진다는 말과도 같은데, 밤이 길어진다는 건 가을이 오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봄이면 여름이, 여름이면 가을이, 가을이면 겨울이 이미 와 있는 것일까. 각 계절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의 전조일 뿐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 것일까. 김경주 시인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시집의 제목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을 살고 있는 것일까. 부질없는 생각들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어쨌거나 내일은 초복이고, 그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라는 뜻이겠지.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계절을 살아간다. 이 세상에 있는 계절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한게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껏 살아왔고, 지금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 것이기 때문에. 물론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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