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백신의 계절, 코로나의 시절

시월의숲 2021. 8. 8. 01:21

습하고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맥이 빠진 것도 있고, 더운 날씨에 돌아다니는 것도 내키지 않고 해서 여름휴가를 아직 가지 못했다. 하긴, 휴가라는 게 뭐 별거 있나 마는, 그래도 휴가는 휴가니까. 어딜 꼭 가지 않더라도 그냥 쉴 수도 있는 거니까. 쉬긴 쉬어야 하는데, 언제 쉬어야 할지 달력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그냥 주말을 끼고 하루나 이틀 쉴까, 네 명 이상 모이질 못하니 가족들끼리 어디 가기도 그렇고, 그럼 그냥 아무도 만나지 말고 혼자 집에서 뒹굴거릴까 생각해본다. 아무렴 어떤가. 되는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될 일이다. 

 

금요일에는 갑자기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게 되었다. 저번 주에 직장에서 잔여백신을 맞을 사람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했더니 바로 금요일에 백신을 맞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함께 잔여백신을 신청한 직장동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날 나 연가인데...', '아, 그날은 연수가 있는데...' 하면서 난감해했다. 나도 그날은 삼일 동안 받는 재택 연수의 마지막 날이어서 나오기가 힘들 거 같아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더니, 그날 맞지 않으면 또 언제 맞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연수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나와 주사를 맞고 가기로 했다. 

 

국민체육센터에 임시로 설치된 백신 예방접종센터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이미 오래 단련된 사람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발열체크와 손 소독을 한 후, 신분증을 제시하고 간단한 예진표를 받아 체크리스트에 체크한 다음, 의사의 예진을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무척이나 어려 보이는 의사는 내게 이번이 첫 번째 예방접종이냐고 물었고, 과거 독감 주사를 맞았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랄지 특이사항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이번이 첫 번째 예방접종이며, 독감 주사는 맞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꼭 독감 주사가 아니더라도 일반 주사를 맞고 나서 이상 증세가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의사의 예진이 끝나고 나는 번호표를 받았고, 내 차례가 되자 칸막이로 나누어진 주사실 한 군데를 들어가 주사를 맞았다. 주사는 무척이나 짧게 끝났는데, 맞을 때 아픈 느낌은 없었다. 주사를 맞고 나서는 15분 정도 대기하다가 집에 가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 시간이 설정된 타이머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멍하니 타이머를 목에 걸고 대기실이라고 꾸며져 있는 강당 한 켠의 의자에 앉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나는 속으로 약간의 감탄을 하며, 그곳에서 수고하고 있는 모든 종사자들을 우러러보았다. 어디 위대한 사람이 따로 있는가,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서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백신을 맞기 전에 미리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터였다. 지금껏 언론에서 무수히 떠들었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서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긴, 나 역시 아버지가 백신을 맞고 난 후 수시로 전화를 했으니까. 백신을 맞고 3일 정도는 경과를 봐야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나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다만 주사를 맞은 왼팔이 욱신거리는 정도랄까. 그 정도는 다른 주사를 맞아도 그럴 테니 특별하달 것도 없다. 그조차 시간이 지나니 점차 나아진다. 생각했던 거보다는 잘 견디고 있는 것이겠지.

 

하루빨리 백신의 계절도 가고, 코로나의 계절도 물러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긴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를 어찌 예견할 수 있었을까. 어쩐지 코로나 이전의 시절이 아주 오래된 것만 같다. 그때는 마스크 없이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이전의 시대와 다를 것이라고들 말한다. 어찌되었든, 코로나 이후의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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