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의 맨드릴 원숭이는, 암수 한 쌍이고 나이도 비슷했다. 그는 그런 둘이, 신방을 차리기는커녕, 암컷이 절대로 수컷 가까이는 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리가 좁아 한 놈이 바닥을 돌아다니면 한 놈과 저절로 부딪치기 마련이었다. 둘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서 있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암컷은, 수컷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될 때면, 철골 구조물을 타고 우리 꼭대기로 훌쩍 올라가버렸다. 암컷과 수컷 사이에 무슨, 안전거리 규정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안전거리는, 육체를 가진 생물이면 어느 것에나 있는 것이었다. 육체란, 공간이라서 그렇다. 해수 속의 박테리아부터, 사우나탕 휴면실에서 잠잘 자리를 찾는 발가벗은 사내들까지. 그 살아 있는 공간인 육체는 항상, 타생물과의 일정한 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불안해지지 않으려면, 불안해지지 않고 최소한의 안정이라도 누리고 싶다면, 그리고 불안해진 나머지 이웃의 목을 물어뜯어 정맥을 끊어놓고 싶지 않다면,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너무 가까이 서 있으면 다친다. 다쳐도 그건 네 책임이야 ― 하고 말이다.(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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