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나무는 나무의 일을

시월의숲 2021. 9. 5. 00:41

 

저수지 주변은 고요했다. 그곳은 늘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자주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곳의 풍경과 바람 그리고 고요함이, 늘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고 마음이 내킬 때면 혼자 찾아가 조용히 걷다 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안내한 것이다.

 

언제나처럼 조용하다못해 고요한 그곳은 명상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저수지 주위를 천천히 걷다가 생각난듯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보이는 넓은 논과 아담한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시원함을 폐 깊숙이 들이마시고 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저수지는 그리 크지 않다. 그 둘레를 걸으면서 푸른 나무와 이름모를 야생화와 들풀들, 갖가지 벌레들을 보는 그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여름의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매미들의 저 울음이(왜 운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그 울음소리에 담긴 매미의 역사가 어떤 감정선 하나를 건드린다. 그들의 울음은 왜 비장하게까지 들리는가.

 

울창했던 숲의 녹음도 이제 한여름의 그것이 아니다. 뜨겁던 여름의 기억을 간직한 채, 성급히 떨어진 낙엽들을 밟으며 천천히 걷는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대로, 나무는 나무의 일을, 들풀은 들풀의 일을, 매미는 매미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진정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