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달걀과 닭》, 봄날의책, 2019.

시월의숲 2022. 2. 13. 23:33

우리는 종종 서로를 알아본다. 어떤 특정한 응시의 방식, 악수를 하는 특별한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제 변장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비록 말을 나누지는 않지만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비록 진실을 말하지는 않지만 가식으로 꾸밀 필요도 없다. 사랑은, 좀 더 많은 관련이 허락되는 일이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한 거대한 환멸이기 때문이다. 환상의 상실을 견뎌낼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사랑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이다. 사랑은 궁극의 가난이다. 사랑은 갖지 못함이다. 게다가 사랑은, 사랑이라고 여겨오던 것에 대한 환멸이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만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16~17쪽, 「달걀과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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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실수한 거야." 그는 피곤해 보였고 눈 주변에 거무스름한 그늘이 있었다.

아나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알아차린 그는 그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녀를 끌어당겨 안고 성급하게 어루만졌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그녀가 말했다.

"일생에 한 번 정도는 오븐이 폭발하는 일도 겪어볼 만해." 그가 미소로 대답했다.(38쪽,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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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그날, 불변성의 매우 독특한 형태를 알게 되었다. 바로 충족되지 않는 소망의 불변성.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의 불변성. 생애 처음으로, 절제에 헌신하는 존재인 그는, 생애 처음으로, 무절제함에 끌리는 자신을 느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격정을 향한 사랑을 느꼈다.(76쪽, 「진화하는 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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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오직 홀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숨 가쁘게, 한마디 말도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암탉은 달렸다. 때때로, 숨을 헐떡이며 달아나는 중간에, 남자가 지붕을 넘어오다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힘들게 균형을 잡는 사이, 건너편 지붕의 끄트머리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암탉은 잠시나마 숨을 고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암탉은 자유로워 보였다.(91쪽,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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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너무도 심하게 괴롭혔고,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내 사랑이기도 한 그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어서 좀 괴로웠다. 하지만 그 사랑이란 내 미래의 모습인 성인 여자의 입장에서 그를 사랑했다는 말이 아니라, 아직은 태어나서 한 번도 비겁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처럼 힘센 남자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다니는 걸 보고 분노가 치민 나머지 어른을 보호하려고 서툴게 나선 아이처럼 그렇게 그를 사랑했다는 뜻이다.(96~97쪽, 「소피아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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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본모습을 원하고 또 원하지 않느라 항상 바빴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나를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나를 전부 가지는 건 불가능했다. 태어났다는 것은 수정해야 할 수많은 오류를 지녔음을 의미했다.(101쪽, 「소피아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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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왜 이렇게 긴가요? 너를 죽음으로부터 비틀어 떼어내고 너의 몸에서 치명적인 가시를 뽑아내기 위해서, 하고 늑대인간은 대답했다. 입은 왜 그렇게 게걸스럽고 끔찍하게 생겼나요? 너를 씹은 다음 입김으로 호호 불어주려고, 그래야 네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 테니까, 난 어차피 널 아프게 할 수밖에 없어, 나는 불가피하게 늑대란다, 그렇게 태어났으므로 피할 수가 없어. 그렇게 까칠거리고 우악스러운 손은 뭐에 쓰는 건가요? 우리가 서로 손을 잡기 위해서지, 나는 그게 필요하니까, 너무도 많이, 너무도 많이, 너무도 많이―늑대 무리는 울부짖었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잠들려고 몸을 밀착시키기 전에, 겁먹은 눈길로 먼저 자신의 발톱을 바라보았다.(120~120, 「소피아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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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순간 그녀에게는,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아픔으로 다가올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158쪽, 「어느 젊은 여인의 몽상과 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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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전능한 신을 상대로, 짓이겨진 쥐 한 마리로 나를 짓이겨버릴 수 있는 신을 상대로 무슨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고독한 피조물의 취약함. 복수심을 불태우는 나는 신을 볼 수도 없고, 신이 어디에 머무는지도 알지 못했으며, 그가 주로 어떤 사물에 깃드는지, 그래서 내가 그 사물을 무섭게 누려보면 신을 노려보게 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쥐 안에? 저 창문에? 길가의 돌멩이에? 내 안에는 더 이상 신은 없었다. 나는 내 안에서 더이상 신을 발견하지 못했다.(200~201쪽, 「용서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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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인도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만히 선 자세의 여러 단계를 다 거치려는 듯이, 그녀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어 계속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다음 머리를 움직였고, 다시 더욱 심오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254쪽,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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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증오해. 여자는 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자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282쪽, 「버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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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너머에는 소리가 있다. 시각의 먼 끝에는 풍경이 있으며, 손가락의 끝에는 사물이 있다―그곳으로 나는 간다.

...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처럼―그곳으로 나는 가고 있다.

...

나는 내가 선언하는 하나의 나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무를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으로만 나는 확장되고 와해될 것이며, 그때 누군가가 애정을 담아 내 이름을 말하게 되리라. 

내 가엾은 이름을 향해서 나는 간다.

...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의 모서리에는, 우리가 있다.(294~295쪽, 「그곳으로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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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언제쯤 사라질까요?"

"뭐가 사라진단 말인가요, 부인?"

"그거요."

"그거라니 뭐요?"

"그거요." 그녀는 반복해서 말했다. "성욕 말이에요." 마침내 그 단어를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전 여든한 살인데요!"

"나이는 상관없어요, 부인. 그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겁니다."

"세상에, 끔찍하군요!"

"그런 게 인생이죠, 하포주 부인."(314쪽, 「발자국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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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358쪽, 「브라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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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느냐고. 예측할 수 없는 부조리와 돌연함으로 가득한 그녀의 글은 구조나 플롯으로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내가 받은 느낌은, 전체 이야기가 하나의 덩어리로, 한꺼번에 다가온다는 것이다. 마치 꿈이, 특히 악몽이 그렇듯이. 글쓰기의 테크닉을 전혀 발휘하지 않거나 혹은 아예 무시하는 듯 보임으로써 도리어 증폭되는 효과가 있다.(365쪽,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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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에 따른 수난』이 내게 어둡고도 둔중한 충격이었다면, 「달걀과 닭」은 희게 번득이는 빛의 칼날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칼날에 베이는 것을 사랑한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의 촉감을 가진 광선이 피부 속으로 곧장 들어와 나라고 불리는 한 순간을 직선으로 투과하고 빠져나간다. 나는 희고 투명하게 피폭되었다.(369쪽,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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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과 닭」뿐 아니라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모든 글이 대체로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은, 타인에게 만족감을 선사해주지 않는, 문법과 기존의 언어 사용법을 초월한 묘사들이 넘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은 그녀의 글을 한마디로 설명하거나 정의하기 어렵게 만든다.(370쪽,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