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른의 시절

시월의숲 2022. 2. 14. 22:04

열 살 때는 스무 살이 어른인 줄 알았고,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어른인 줄 알았으며, 서른 살 때는 마흔 살이 어른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와 같은 생각은 너무 순진하고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어른이 자기긍정과 타자에 대한 전폭적인 이해를 완성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어른의 시절은 없는 듯하다. 불안의 정도, 불안의 깊이가 다를 뿐이고,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죽음과 직면할 뿐이다.(김도언, 『불안의 황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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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른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어떨까. 내가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 되면 어떨까? 어렸을 때는 마흔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못했다. 서른이 가까스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의 나이였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도 있었지만 그들은 내게 처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였으므로 내가 아버지의 나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이가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은 그때의 내가 조금 이해가 된다. 그때 만약 내가 서른 이후의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나이와 상관없이 조금은 어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지금, 위 문장들처럼, 인간에게 어른의 시절은 없는 듯하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도 매번 자기부정에 빠지고, 타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 문장을 다시 읽었을 때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어른의 시절은 없다. 아니, 자꾸 범위를 넓히지 말자. 적어도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슬픈가? 모르겠다. 슬픈지 그렇지 않은지. 슬픈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라는 자기위안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어른스러운' 것과 '어른'은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닌가.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이지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