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시월의숲 2022. 2. 9. 10:59

출장차 경주에 가게 되었는데, 시간이 남아 황리단길을 걸었다. 황리단길은 이전에도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거기, 작은 서점에서 시집과 소설책을 산 기억이 났다. 오랜만에 간 그곳엔 여전히 젊은 사람들로 활기에 차 있었다. 거리를 걸으면서 보니, 식당과 카페를 제외하고 타로나 점을 봐주는 가게가 생각보다 많았다. 사람이 직접 점을 봐주는 가게도 있었고, 아이들 뽑기처럼 돈을 넣으면 띠별 혹은 별자리별로 운세를 뽑을 수 있는 무인 자판기도 있었다. 유독 많은 사람들이 서 있던 무인 운세 자판기가 생각난다. 주요 고객은 아무래도 젊은 연인들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돈을 넣고 자신의(?) 운세를 뽑는다. 물론 재미로 하는 놀이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운 혹은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구나 생각했다. 그들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 뽑히는 자신의 운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유독 젊은 사람들이 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젊다는 데 있는 것일까? 젊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고,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뽑은 자신의 운세가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오히려 그렇게 얻은 몇 줄의 문장이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우리는 우연히 뽑은 그 문장들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그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생각하게 되면 싫든 좋든 그 방향으로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말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므로.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인 운세 자판기 앞에 서 있던 많은 청춘들을 떠올리니 말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사로잡힘에 대해서. 방황하는 청춘들. 보이지 않는 미래. 어두운 길을 밝혀줄 몇 줄의 문장에 대해서. 어쩌면 그게 그들의 특권인지도 모르겠지만.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우연이기 때문에 계시로 보이는 것일지도.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