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 뿐이란 걸

시월의숲 2022. 2.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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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파트에 부쩍 사다리차가 자주 보인다. 이사를 오는 건지 가는 건지 궁금해서 잠시 바라본다. 하지만 한 번 올라갔거나 내려온 사다리차의 받침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늘 이사를 오는지 가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시선을 거둔다. 

 

왜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는가? 이삿짐에 실린 누군가의 삶이, 그 사적인 은밀함이 궁금하기 때문일까? 나와 한 번도 만날 일이 없고, 스치는 일조차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사다리차의 저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외형에 끌리는 것일까? 쓸데없는 의문과 공상이 꼬리를 무는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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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동안 가족들을 만나느라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 비로소 오늘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며칠 가족들이 다녀간 집은 꽤 어질러져 있었다. 일어나서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았다. 그저께 빨아놓은 니트를 접어서 옷장에 넣었다. 자고 일어난 침구를 정리하고, 화초에 물을 준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인터넷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조금 본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에 잠긴다. 연휴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이 없는 생각을 하고 또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오늘처럼 내 앞에 놓인 일상을 사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어쩌면 조금씩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일상이 있어(그것이 한없이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한없이 반복되는 것이기에 더욱)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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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한다. 왜 나를 생각해주지 않지? 왜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며 나를 따돌리는 거지? 왜 내 고통에 대해 무신경한 거지? 나는 너를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는데 왜 너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이 모든 물음들을 애정결핍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만큼의 기대를 해야만 하는 걸까. 이것은 기대 혹은 바람의 문제일까.

 

나는 너의 마음속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너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행복만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게 서로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내가 행복해야 너도 행복하고,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행복한데 왜 나는 불행한가 묻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늘 행복해지기보다 불행해지는 쪽을 택한다. 마치 그렇게 작동되도록 프로그램된 것처럼. 인간들은 운명적으로 불행하기 때문에 그렇게도 행복을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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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을 찾는다. 그것을 잡아 가까스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문장들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렇듯 몇 개의 문장들을 찾아내는 것뿐이란 걸.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받지 마."(한강, 「밝아지기 전에」 중에서 -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