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

시월의숲 2022. 3. 21. 23:30

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깨고 나면 달콤했던 예전의 쓸쓸함이 아니고 쓸쓸함은 이제 내 머릿골 속에서 중력을 갖는다. 쓸쓸함이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뒤켠 죽음의 근처를 응시하는 눈을 갖는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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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고 싸울 것을, 이 한 시대의 배후에서 내리는 비의 폭력에 대항할 것을,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독毒보다 빠르게 독보다 빛나게 싸울 것을. 내가 꿀 수 있는 마지막 하나의 꿈이라도 남을 때까지.(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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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만큼 강한 공감을 일으키는 것도 없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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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그러나 그들의 배고픔만큼이나 요지부동인 예술의 꿈 하나로 자존심을 버티면서, 그들은 몹시도 배고픈 밤이면 시장 뒷골목에서 쥐를 잡아먹고 살았다. 누가 믿겠는가. 서울 거리에서 누군가가 배가 고파 쥐를 잡아먹었다면? 그들이 그 배고픔의 이야기를 할 때, 물론 나는 그들의 배고픔을 이해했고 그래서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가진 그 탐욕적일 정도의 꿈과 그 배고픔이 혹시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꿈의 배고픔, 혹은 배고픔의 꿈 같은 것을 느낀다. 진정으로 훌륭한 예술이란 어쩌면 어떤 배고픔, 아니면 그것의 다른 얼굴인 어떤 꿈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해놓은 것이 아닐까.(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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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뭐하러 쓰냐고? 글쎄 그럼 시를 뭐하러 안 쓰지? 뭐하기 위해서 시를 안 쓰는 것은 아닌 것처럼, 뭐 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일는지도 모른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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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꿈을 짓밟아오기만 한 인생아, 마지막으로 한판만 재미있게 잘 풀려줄래? 그러면 그 다음에 내가 고이 죽어줄게. 꽃처럼 피어나는 모가지는 아니지만, 고이 꺾어 네 발밑에 바칠게. 이번에도 네가 잘 풀려주지 않으면 도중에 내가 먼저 깽판 쳐버릴 거야. 신발짝을 벗어서 네 면상을 딱 때려줄 거야. 그리고 절대로 고이 죽어주지 않을거야.(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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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디로부터인가는 떠났으되 아직 어디인가에는 도착하지 않은, 두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듯한 미정의 시간들.(3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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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영원한 마침표를 찍었으며, 조만간에 그녀가 살았던 한 문장 전체가 차례차례 지워져나갈 것이다. 그 길고 아, 그러나 너무도 너무도 짧고, 지루하고 지겹고 고달프고 안간힘 써야 했던 한 문장이. 쓰일 때보다 몇억 배 빠른 속도로 지워져 마침내 텅 빈 백지만 남으리라. 그뒤엔 이윽고 그 백지마저 없어져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살았던 문장의 문장 없는 마침표 하나, 지구상의 외로운 표적 하나, 그녀의 무덤 하나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그 어떤 동사도 이제는 모두 과거형을 취하리라.(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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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제의 한 죽음을 통해, 죽음은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죽음은 다만 한 문제 자체를 도중에 종결시켜버릴 뿐이며, 더 나아가 그 문제엔 해답이 없을지도 모르며, 더 더 나아가 아마도 그런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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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삶의 편에서 죽음을 짝사랑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죽음의 관념은, 어머니의 실제 죽음을 통해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비로소 나는 그래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명분,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본능을 되찾은 것 같다.(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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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산다는 게 지저분한 오물들을 입안에 잔뜩 처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입안에서 그 오물이 자꾸만 커져가는 듯하고, 그러한 느낌, 그러한 의식 자체가 우리의 숨통을 짓눌러오는 때가 있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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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 삶. 꿈과 상처.(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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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가족과 이웃과 사회 일반으로부터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게 되고, 그 받은 것을 밑받침으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여 결국 어느 때엔가는 자신이 받은 만큼 주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해야 할 도리로서.(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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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입은 사람들의 입장은 더없이 슬프지만 문상객인 내 입장에서는 별로 서러울 것도 없고, 다만 삶의 행간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죽음의 그림자들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짧은 한순간,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인가 따위의 침울한 생각에 빠지는 것뿐이었다. 병풍 하나로 죽음을 온전히 가리고 그 앞에서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그러한 풍경들이 하나도 불경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삶에 편안하게 만들어진, 지혜로운 죽음의 예식인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항시 삶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야 편안한 것인가. 아니 어쩌면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이며, 삶의 자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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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 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 될 때까지.(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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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라니, 무엇을! 잊을 무엇도 없이, 무엇을 잊어야 할 것인지도 모르면서 밤마다 잊고 또 잊는다.

잊어버리기에 지쳐, 마침내 몸과 마음이 쓰러져 누울 때, 그때 고요히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나의 삶이 이래도 될까?' 하는 질문들이. 그때야말로 그 한 해의 삶의 의미를, 삶의 결실을 거둘 때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그야말로 뿌린 대로 거둘 때이다.(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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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 것이 만약에 내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고, 다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완벽하게 놀고먹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현실에 아무런 역동적 작용도 할 수가 없는, 힘없는 시시한 위안일 뿐이다.(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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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은 이제 쉽게 쓰이고 쉽게 잊히고 쉽게 버려진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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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사실도, 그것의 실체도 명확히 의식하지 못한 채, 아픔을 가해오는 그 억압자에게 온 힘으로 저항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 비명은 도와달라는, 무섭다는, 싫다는 비명이다. 그런데 가위에 눌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아무리 소리치려 해도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마만큼의 힘을 쓰며 저항한 뒤에야 비명이 터져나오고, 그것이 자신의 귀에 들리게 되면서 비로소 그 가위눌림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141~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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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그리기보다는 그들 날갯짓의 중노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든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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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 외국은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거야.(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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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 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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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