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추신 - 나도 네 꿈을 꿔.
- 영화 <윤희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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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잘 짜인 단편소설을 한 편 읽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본 영화 <러브레터>도 생각났다.(영화 속 배경 도시가 오타루인 데다가 '편지'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한다) 감독도 아마 그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고 눈과 편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 대해서.
가족은 서로에게 족쇄와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특히 성소수자를 가족으로 둔 집안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생각해보라. 당사자는 정말 죽음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치유의 방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상처를 받은 그곳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쥰의 고모가, 윤희의 딸이 그런 역할을 한다.
퀴어 서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사회에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채(상처받고 억압받은 채)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폭력적이며 허망할 것인가. 그런 삶은 살아도 어쩌면 사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삶을 사는 윤희에게 날아든 한 장의 편지는 그녀를 다시 가슴 뛰는 삶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그것은 보내지 못한 편지를 쓰고 있는 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는 감정적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눈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후반부에는 탁, 하고 터지는 부분이 있다. 바로 윤희와 쥰이 만나는 장면. 그 장면에서 흐르는(흘릴 수밖에 없는) 윤희의 눈물은 그래서 좀 후련한 기분도 든다. 그 만남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때로 어떤 이에게는 무척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좀 슬펐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쥰의 고모가 오타루에 끝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입버릇처럼 말한다. 쥰은 그런 고모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쥰이 윤희를 만나고 난 후, 그녀가 고모와 함께 눈이 내리는 길을 걸어가면서 고모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그녀는 한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나는 이 장면이 쥰의 심경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매번 똑같이 내리는 오타루의 눈을 바라보며 고모가 하는 말이 새삼스럽고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쥰이, 윤희를 만나고 난 이후에 바뀌고 있다는 것. 오타루의 눈은 매년 그렇게 오지만, 그래서 무덤덤하고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 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 의미 없지 않다는 것. 삶은 그렇게 새삼스럽다는 것. 그런 것 말이다.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언젠가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사족>
- 임대형 감독의 영화다. 남성이, 여성을 다루는 이 섬세한 영화의 감독이라는 사실에 놀랐다(오래전 <여자, 정혜>의 감독이 남성이었다는 사실에도 놀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의 남성들에게 어쩌면 조금의 희망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 모든 남성들이 다 인셀에다 한국 조폭 누아르의 주인공들은 아닐 테니까. 때로 이렇게 섬세한 남자들도 있는 것이다.
- 배우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윤희 역의 김희애는 말할 것도 없고, 새봄을 연기한 김소혜, 쥰 역의 나카무라 유코, 마사코(쥰의 고모) 역의 키노 하나 등등. 모든 배우들이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이 영화를 보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타루에 가보고 싶어졌다.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눈이 내린 오타루를. 어쩌면 밤새 긴 편지를 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