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파워 오브 도그

시월의숲 2022. 1. 15. 00:27

 

 

(스포일러 주의)

 

 

*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보았다. 이 영화는 뭐랄까, 여러모로 내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외피는 서부극처럼 보이는데,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퀴어 로맨스 영화인가 싶다가도, 그보다는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인가 싶을 때쯤 차가운 복수극으로 끝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다. '개'로 대변되는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그 의문은 영화의 마지막에 피터가 읽는 성경의 한 구절을 통해서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비로소' 나는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존재감과 그가 맡은 '필'이라는 인물의 위악적인 내면 때문에 그에게 자꾸만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피터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뒤틀린 혐오를 직시하면서 솔직한 자신과 대면하여 결국 자신을 인정하게 되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 이유다. 필의 입장에서 '개의 세력'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영화의 제목은 필의 시점이 아니라 피터의 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피터의 입장에서는 복수의 성공 -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는 일 - 이겠지만, 필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한없이 억울한 일이 아니었을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결말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이런 상상은 필이 흔한 이성애자 남성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정체성은, 그가 가진 뒤틀리고 모순적인 혐오와 타인에게 서슴없이 행하는 조롱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가 타인들에게 내뱉은 말들이 다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

극 중에서 조지가 로즈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제인 캠피온 감독의 1993년작인 <피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물론 영화에서 피아노를 받는 사람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지만.

 

*

<파워 오브 도그>와 <피아노>는 비슷한듯 대조적인데, <피아노>에서의 음악이 영화의 격렬함을 적극 드러낸다면, <파워 오브 도그>에서의 음악은 잔인하리만치 절제되어 있어 이 영화의 차가움을 적극 드러낸다.

 

*

피터 역을 맡은 코디 스밋 맥피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엑스맨 아포칼립스와 다크 피닉스에서 나이트 크롤러 역을 맡은 배우였다니!

 

*

커스틴 던스트를 오랜만에 보았다. <매혹당한 사람들>을 볼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에 나온 그녀를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세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급기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생각이 나다니!

'봄날은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배트맨  (0) 2022.03.07
레베카  (0) 2022.02.11
돈 룩 업  (0) 2022.01.08
고요의 바다  (0) 2022.01.02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0) 20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