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더 배트맨

시월의숲 2022. 3. 7. 21:52

 

실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나이트메어 앨리>를 보고 싶었으나, 내가 사는 곳 그 어디에도 상영하는 데가 없었다.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린 뒤,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며 요즘 무슨 영화가 대세인가 보았다. <더 배트맨>이 상영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배트맨 캐릭터도 좋아해서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겠다 싶었다.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평일 오후의 상영관에는 나 이외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상영관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으로 내가 예매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이전 영화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닌가 생각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느낌이 어땠냐고? 나는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영화의 긴 러닝타임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세간의 평가도 그리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느긋하게 캐릭터가 가진 음울한 매력을 즐기면서 영화를 보았다. 

 

확실히 이 영화는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이었다. 그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가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보다 마스크를 쓴 장면들이 더 많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음울하고 분노에 찬 눈빛은 오히려 크리스찬 베일의 그것보다 때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배트맨 단독 영화는 아니었지만, <저스티스 리그>에 나왔던 벤 애플렉에 비하면 얼마나 더 '배트맨' 같은가 말이다.

 

배트맨은 태생적으로 어둠의 기사다. 배트맨이 배트맨다워지려면 어둠에 더 가까워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속 그가 말했듯, 배트맨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 그 자체이므로.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이전에 나왔던 어떤 배트맨 영화보다도 어둡고, 그래서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이 영화에서 배트맨은 더이상 초능력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보다도 더.

 

다만 아쉬운 점은, 기왕 탐정 같은 모습을 보여줄 거였으면 좀 더 확실히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배트맨이 마음에 든다.

 

 

*

아, 그나저나 리들러로 나온 폴 다노는 왜 이렇게 살이 쪘는지?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최악의 악당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귀여운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도 무슨 반전 같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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