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회복하는 인간

시월의숲 2022. 5. 4. 15:18

언제나 그렇듯 통증은 나를 고립시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다.(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

코로나에 확진되고 오늘이 격리 마지막 날이다. 처음 자가 키트에 양성이 나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내가 양성이라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말 끝까지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정말 집과 일터 이외에는 거의 돌아다니지 않은 것이다.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하기 전까지도 내가 양성임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걸리기 시작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내가 가만히 있더라도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속세를 떠나 깊은 산 속에 은둔하지 않는 이상 내가 바이러스로부터 도망칠 곳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첫날 확진 판정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했는데,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확진 판정을 받으니 더 아픈 것 같았는데, 그건 느낌이 아니라 정말 더 아픈 것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병가를 내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나니 뭔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아플 일만 남았구나 생각한 순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열이 났다. 목이 아팠고, 몸살기가 있었고, 잔기침이 나기 시작했으며, 머리가 아팠다. 첫째 날 밤은 정말 힘들었다. 아파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혼몽한 정신에 꿈인지 뭔지 모를 것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것이 꿈인지, 아니면 혼란스러운 생각의 덩어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잠에 들었으나, 그것은 잠이라기보다는 육체적 고통과의 대면이었고, 열에 들뜬 채 뒤척이다 떠올린 망상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꿈 혹은 망상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단지 불쾌한 감정만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잠으로 빠져드는 것을 방해하곤 했다. 무겁고 둔중한 무언가가 내 몸과 정신을 억눌렀다. 나는 그 무게에 눌린 채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얕은 숨을 쉬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지, 정신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것이 '아픔'이라는 사실만은 무엇보다 명료하게 느낄 수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인간을 회복하게 한다. 첫째 날 보다는 둘째 날이, 둘째 날보다는 셋째 날이 더 살만했다. 아픔은 그렇게 하루하루 잦아들었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을 쉬어 본 적이 없음을 문득 깨달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일주일 간의 시간을 오로지 회복을 위해서 살고 있다니. 이것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픔과 아픔을 둘러싼 것들

그리고

나 자신과 내가 가진 아픔.

 

나는 온전히 아픔을 앓았고, 온전히 그것이 물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아픔이 그러하겠지만, 아픈 사람은 아픈 자신과 자신의 아픔, 이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오로지 아픔 그 자체와 독대하는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그 이외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픔과 대면하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을 것이나,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아프면 아픈 대로 아파할 수밖에. 그렇게 아픈 시간을 지나 지금은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아픈 인간'에서 '회복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바이러스가 끈질기게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오늘부터 약이 떨어졌으나 새로 처방받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집에 있는 타이레놀을 한 알씩 먹고 있다. 몸이 아프니까 자꾸 한강의 소설들이 생각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려나.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한강의 단편 「회복하는 인간」을 읽는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설정은 다르지만, 이 소설은 뒤에 나온 『흰』이라는 소설의 원형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 흉터는 남을지언정 상처란(어떤 종류이건) 언젠가는 회복되는 것이리라. 지금은 결코 알 수 없을지라도. "괜찮아. 진짜 금방 낫는대. 시간만 지나면 낫는대. 누구나 다 낫는대." 소설 속 저 문장들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문다. 나는 그 문장들을 혼자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삼스럽다는 것  (0) 2022.05.10
푸르른 날  (0) 2022.05.07
저녁의 어스름 속으로  (0) 2022.04.25
내 것이 아닌 말들  (0) 2022.04.25
단지 벚꽃이 핀 나무 아래를 걸었을 뿐인데  (0)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