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새삼스럽다는 것

시월의숲 2022. 5. 10. 00:24

월요일의 늦은 오후.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숨 좀 돌릴 겸해서 밖으로 나왔다. 요즘은 출퇴근 길에 가로수로 심긴 이팝나무 꽃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무실 주위에도 이팝나무가 몇 그루 심겨 있었다. 나는 이팝나무 그늘 아래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 하얗고 탐스러운 꽃을 들여다보았다. 푸르른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비췄고 부는 바람에 나무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불었는데도 곤충의 여린 날개 같은 하얀 꽃잎은 떨어지지 않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파르르 파르르 날갯짓을 해댔다.

 

나는 작년에도 보았을 그 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문득, 새삼스럽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것인가 생각했다. 새삼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그것은 매번 반복되는 우리 삶에 신선한 활기를 주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지, 새삼스럽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계절은 다름 아닌 봄이다. 봄은, 긴 겨울을 견딘 모든 것들이 비로소 깨어나는 계절인 것이다. 그 갑작스러운 활기 속에서 만물이 생동하는 것을 보는 것은 늘 새삼스러울 수밖에. 

 

작년에도 벚꽃은 피었고, 이팝나무도, 장미도 피었다. 재작년에도 피었고, 그 이전에도 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필 것은 핀다. 그러니 작년에도 피었던 이팝나무 꽃을 보고 뭘 그리 새삼스러워하느냐고 타박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그것은 작년의 이팝나무 꽃이지 올해의 이팝나무 꽃은 아니지 않나요? 올해는 올해의 이팝나무 꽃이 피었단 말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나는 올해의, 지금 내 앞에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새삼스럽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삼 깨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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