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저녁의 어스름 속으로

시월의숲 2022. 4. 25. 23:00

오늘은 월요일. 월요일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날 보다는 좀 더 힘겹게 느껴진다. 그래서 월요일의 퇴근은 평소보다 더 홀가분하다. 그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에 오는데 오늘부터 아파트 지하주차장 바닥 보수공사를 한다는 안내를 받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중주차를 하거나 차를 다른 곳에 세워두고 오라는 안내멘트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현장 사정이 어떤지 몰랐으므로, 일단 아파트 지하에 댈 곳이 있으면 대고, 없으면 지상이라도 어디 댈만한 곳을 찾아보자 생각해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헌데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막히기 시작했다. 먼저 퇴근한 차들이 아파트 내 주차할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 나오느라, 들어가는 차량과 얽히고설켜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재빨리 회전교차로를 돌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파트 인근 공영주차장으로 가 적당한 곳을 골라 세워놓고 집을 향해 걸었다.

밤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인지, 하늘은 평소보다 흐렸고,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천천히 십여 분 남짓 되는 거리를(횡단보도에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오 분 정도 될 거리를) 걸었다. 저녁 무렵의 퇴근길은 이런 모습이구나, 새삼 신기해하면서 걷는데, 그 짧은 순간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매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쏙 들어가는 게 다였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저녁 무렵의 그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낮의 거리와 저녁의 거리는 사뭇 달랐다. 나는 마치 이방인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들, 나무들, 사람들, 간판들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저녁의 어스름에 젖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스쳐 지나갔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여인들,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있는 학생들, 운동복을 입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 강아지를 끌고 가는 부부, 굉음을 일으키며 도로를 질주하는 배달원들이 저녁의 어스름 속으로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나 또한 그들 속에서 하나의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어스름 속에 묻힐 것이다. 그 사실이 어쩐지 내게 알 수 없는 위안을 주었다. 단지 내가 그 속에 익명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렇게 서로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이 어쩐지 눈물이 날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것은 설명하기 힘든, 낯설고도 독특한 감정이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한동안은 그 짧은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녀야 할 것이다. 그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때로 그것이 매번 똑같던 일상에 파문을 던져주며 색다른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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