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쩌면 당연한 일

시월의숲 2022. 5. 25. 22:02

SNS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말라는 충고 영상을 보았다. 인터넷에는 내가 작성한 기록을 삭제하더라도 어딘가에는 남아 있어 그것이 악용될지도 모르기에 그럴 수 있다 쳐도, 실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대부분 내 이야기를 하지만 - 어쨌거나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 대화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보다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사람들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간혹 내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가 끝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금세 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알게 되었다. 대화 도중에 내가 저번에 말했는데...’라고 하면, 그들은 마치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그랬던가?’라고 말하고는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걸 내가 꼭 기억해야만 하냐는 듯이.

 

그래,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꼭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나는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잊어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어떤 열패감이나 자기 비하 혹은 뒤틀린 심사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내 이야기를 하고 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가 하는 나의 이야기는 언제나 조그만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강물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어쩌면 당연한 일.

 

나는 그 사실에 깊이 안도한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로지 목소리로 너에게 갈 것이다  (0) 2022.07.08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0) 2022.06.04
지금 이 순간  (0) 2022.05.24
아버지의 침대  (0) 2022.05.16
새삼스럽다는 것  (0) 202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