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시월의숲 2022. 6. 4. 20:54

이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일에 대해서, 내가 어렸을 때, 내게 그늘을 드리웠던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상처에 대해서, 고통에 대해서, 슬픔에 대해서 이제는 다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이제는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갔다. 늘 마시던 커피가 나왔고, 우리들은 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아무런 맥락이 없는 이야기들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하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렸을 때의 나와 나를 둘러싼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집안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추억을 이야기하듯 담담히 그 시절의 나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못할 것도 없었다. 그 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으므로. 

 

나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어쩔 수 없음'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그때 자신이 가진 그 '어쩔 수 없음'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고 결국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고. 그것이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내면의 작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당신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고. 결국 우리들은 모두 나약했던 거라고. 한 가지 덧붙인다면,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던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숨기지 말고 좀 더 해주기를 바랐다고. 그것뿐이었다고.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은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내면의 '어쩔 수 없음'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이들은 더욱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다 실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지 않는가. 스스로를 학대하고 그래서 악습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 아닌가. 여러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것은 아니냐고? 천만에. 이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다. 구조적인 불합리 혹은 시스템의 폐해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들은 나약했고, 벗어나지 못했고, 도피하고자 찾은 것은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순간의 고통을 잊기 위해 결과적으로 더 큰 고통을 불러들이는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없이 한없이 나약할 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죽을 만큼 싫었으나 반대로 한없이 슬프기도 했다. 그렇게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때로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가련한 인간들. 나는 어렸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나는 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 - 인간은 나약하고 슬픈 존재라는 - 생각은 아마도 그때 형성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어쩔 수 없음'을 지닌 존재들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말들을 꺼내기 전까지 나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이건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막상 그 말을 꺼내고 나니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말이라는 게 그런 것인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갑작스럽게 목까지 차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순간 말을 멈춰야만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이것은 슬픔인가? 이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슬픔은 복병처럼 삶 속에 잠복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나타나 우리의 온몸과 온 정신을 점령한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아직은 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느 것도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삶이 있을 뿐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 어긋난 채 지금까지 살아왔더라도, 어쨌거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뿐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예상치 못한 슬픔이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어할밖에.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을 따다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0) 2022.07.09
오로지 목소리로 너에게 갈 것이다  (0) 2022.07.08
어쩌면 당연한 일  (0) 2022.05.25
지금 이 순간  (0) 2022.05.24
아버지의 침대  (0) 2022.05.16